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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사랑·돌봄...詩에서 읽는 '인생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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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사랑·돌봄...詩에서 읽는 '인생의 역사'

입력
2022.11.04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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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신형철 첫 시화(詩話) 출간
동서고금 막론 25편의 시 선정해 소개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
"숨겨진 주제라면, 아이·가족에 대한 사랑"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죽음을 표현한 숫자는 잔인하다. 때론 생명에 대한 모독일 수 있다. 그럼에도 숫자로 기록해야 할 때 최소한의 예의는 무엇인가. 이는 어떤 애도의 태도를 지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과 연결된다. 영국 시인 W. H. 오든의 '장례식 블루스'는 그 실마리가 돼 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을 명확히 함으로써다.

'(…)그는 나의 동쪽이고 서쪽이며 남쪽이고 북쪽이었다,/나의 평일의 생활이자 일요일의 휴식이었고,/나의 정오, 나의 자정, 나의 대화, 나의 노래였다,/우리 사랑이 영원할 줄 알았으나, 내가 틀렸다.//별들은 이제 필요 없다, 모두 다 꺼버려라,/달을 싸버리고 해를 철거해라,/바다를 쏟아버리고 숲을 쓸어버려라,/이제는 그 무엇도 아무 소용이 없으리니.'

문학평론가 신형철(46)은 시 후반부를 "자기 자신을 장사 지내는 사람의 말"이라고 표현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장례식이 곧 나의 장례식이다. 그 이유는 '나'가 "나눌 수 없는 개인(個人)이 아니라 분인(分人)들의 집합"(일본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이라서다. 분인은 특정인과의 관계에서만 작동하는 나를 뜻한다. 이런 관점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이 죽을 때 나 중에 가장 중요한 나(분인)도 죽는다." 그러니 한 사람의 죽음을 '사망 1명'이라 할 수 없다. 5,000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000건 일어난 것이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는 얘기한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고.

시화 '인생의 역사'를 낸 평론가 신형철. 한국일보 자료사진

시화 '인생의 역사'를 낸 평론가 신형철. 한국일보 자료사진

신간 '인생의 역사'는 평론가로는 이례적으로 '팬덤'을 형성한 신형철의 첫 시화(詩話)다. 산문집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이후 4년 만의 책이다. 2016년 한 해 일간지에 연재한 글을 바탕으로 엮었다.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5년 이상 (원고를) 방치 상태로 두다가 올 초 아이가 태어나고 작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훗날 아이에게 '네가 태어난 그해에 한 일'로 이 시화를 보여줄 생각이다.

제목 그대로 인생의 역사를 보여줄 동서고금 스물다섯 편의 시를 모았다. 첫 시는 '교과서 시'로만 보였던 '공무도하가'다. '임이여 물을 건너지 마오./임은 결국 물을 건너시네./물에 빠져 죽었으니./장차 임을 어이할꼬.' 건너지 말라 외쳐도 결국 떠난 남편을 보며 울부짖는 여자를 저자는 상상한다. 그리스신화 속 에우리디케를 잃은 오르페우스도 떠올린다. 남편, 그리고 삶 그 자체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으로 시야는 확장된다. 단절된 태곳적 이야기 같던 이 시는 사실 지금 우리의 삶이고, 미래다. 그래서 인생의 역사를 말하는 첫 시로 '공무도하가'는 손색이 없다.

손을 많이 본 글은 이영광의 '사랑의 발명' 정도라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 'Amo: Volo ut sis.(아모 볼로 우트 시스·사랑합니다. 당신이 존재하기를 원합니다.)'에 얽힌 사연을 꼭 넣고 싶었다는 것. '사랑의 발명'을 이해하는 데 더 없이 좋은 내용을 2016년 연재 이후에야 발견해서 메모해뒀던 부분이다. 또 다른 보충하고 싶은 부분은 부록('반복의 묘')을 통해 더하기도 했다. 최승자, 황동규 시인 등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담았다.

신형철 지음·인생의 역사·난다 발행·328쪽·1만8,000원

신형철 지음·인생의 역사·난다 발행·328쪽·1만8,000원

신형철은 "이 책의 숨은 주제는 아이와 가족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라고 밝혔다. 육아가 요즘 그의 삶에서 가장 큰 관심사라서다. 시를 읽는 일에 "이론의 넓이보다 경험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그의 말이 단숨에 이해된다. 서문과 프롤로그, 에필로그에 그런 생각들이 녹아 있다. 이를테면 박준 시인의 작품에서 읽은 '돌봄'에 대해 쓴 글을 작품 마지막 에필로그에 위치시켰다. 임신, 출산의 과정을 겪고 코로나19 시기도 지나며 절실히 돌봄의 중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돌보는 사람은 언제나 조금 미리 사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미래를 내가 먼저 한번 살고 그것을 당신과 함께 한번 사는 일."

기약은 없지만 바람은 있다. '인생의 역사' 후속을 내는 것이다. 그는 "한국 대중음악 노랫말로만 한 권, 젊은 시인들의 시로만 또 한 권, 이렇게 쭉 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가수 윤상을 향한 '팬심'을 드러낸 글은 이번 책 부록에 실었다. 그에 맞게 윤상의 음악적 동반자, 작사가 박창학의 가사에 대한 글도 후속에서 만날 수 있길 기대하게 된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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