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작 1> 김멜라 '제 꿈 꾸세요'
편집자주
※ 한국문학 첨단의 감수성에 수여해 온 한국일보문학상이 55번째 주인공을 찾습니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10편. 심사위원들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후보작 2편씩 소개합니다(작가 이름 가나다순). 수상작은 본심을 거쳐 이달 하순 발표합니다.
작가 김멜라. ⓒ온정
김멜라의 소설이 처음 등장했을 때 우리는 낯선 이름의 이 작가가 보여주는 대담한 상상력, 그리고 거침없이 쏟아지는 날 것 그대로의 목소리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작품들은 기존의 소설들과 근본적으로 달라 보였는데, 그것은 이성애, 가족중심주의, 휴머니즘 등을 전복하는 그의 퀴어적 정동이 그 무엇보다 자율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세상이 강요하는 규범과 질서의 허상을 드러내고 비판하는 작품은 적지 않다. 그러나 어떤 텍스트는 누군가를 도발하려는 의도 없이도 도발적이고, 무언가를 전복하려는 목적 없이도 전복적일 수 있다. 이처럼 존재 자체만으로도 세계의 경계를 교란하는 김멜라의 작품들은, 첫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 '호르몬을 춰줘요'의 제목에 비추어보건대, 규정될 수 없는 비정형의 에너지(호르몬)들이 벌이는 자율적이고도 강렬한 춤에 비유될 수 있었다.
첫 소설집 출간 후 김멜라가 일약 독자와 평단의 가장 주목받는 동시대 작가 중 하나로 떠오르게 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두 번째 소설집 '제 꿈 꾸세요'에 실린 작품들은 최근 2년간 그 누구보다 왕성한 필력을 자랑했던 김멜라의 다채롭고도 넓은 문학적 스펙트럼을 유감없이 증명하고 있다.
김멜라 '제 꿈 꾸세요'
놀라운 것은 김멜라 특유의 생명력 넘치는 소설적 에너지가 마침내 생에 대한 찬란한 긍정에까지 도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때 긍정을 낙관과 동일시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에 대한 낙관주의적 비전은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추구하며, 결과적으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 대한 환상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반면 김멜라의 긍정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의 존엄함과 신비로움을 현재의 시간 속에서 증언하려는 단단한 의지에 가깝다. 가령, '나뭇잎이 마르고'에 등장하는 퀴어 여성 장애인 ‘체’는 그 어떤 말로도 충분히 표현될 수 없는 인간의 저 강렬한 생명력, 재현 불가능한 인간의 풍요로운 잠재성을 형상화한 대표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이처럼 김멜라의 밝고 명랑한 마술적 언어에 의해 탄생하는 다양한 소설의 인물들은 세상의 폭력과 억압에 끝내 패배하지 않는 인간을 향한 작가의 믿음을 눈부시게 반영한다. 이른바 존재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한없이 강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는 세계. 김멜라의 소설은 그 어떤 규범과 가치로도 결코 환원될 수 없는 인간의 풍부한 잠재성, 그 소진될 수 없는 인간에 대한 사랑을 증언하는, 찬란한 생명의 합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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