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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가스값 일시적 안정... 그러나 중국이 수입 재개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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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가스값 일시적 안정... 그러나 중국이 수입 재개한다면

입력
2022.11.03 04:30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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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탱크 가득 차자 마이너스 가격까지
LNG선 항구 맴돌거나 아시아로 재이동
"일시적 현상일 뿐… 중국 소비 회복 변수"

카타르 북부 라스라판 항구를 지나는 LNG 선박의 모습. AP 연합뉴스

카타르 북부 라스라판 항구를 지나는 LNG 선박의 모습. AP 연합뉴스

"가스를 가져가면 돈을 드립니다."

지난달 24일 유럽에선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천정부지로 치솟던 천연가스 가격이 일순간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잠시 동안이기는 했지만 가스를 사면 돈을 내는 대신 돈을 받는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유럽 각국의 사재기 경쟁 탓에 치솟기만 하던 천연가스 가격이 급락한 것은 순간적으로 공급이 수요를 한참이나 초과했기 때문이다. 원유 시추 때 함께 나오는 천연가스는 보관이나 수송이 어렵다. 당장 남은 가스를 가져갈 사람도 없고 마땅히 저장할 공간도 없다면, 돈을 주고서라도 처리해야 하는 것이다. 가스 가격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것은 생산지인 미국에서는 종종 발생하는 일이지만, 수요처인 유럽에선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유럽 천연가스 선물 가격 흐름. 강준구 기자

유럽 천연가스 선물 가격 흐름. 강준구 기자


예상보다 빨리 찬 유럽 저장탱크

메가와트시(MWh)당 20유로 정도를 장기간 유지하던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 이후 급등, 러시아산 가스 공급 중단이 현실화된 8월 26일 최고점(349.87유로)을 찍었다. 그러나 1일(현지시간) 현재 TTF 선물 가격은 최고점 대비 70% 가까이 떨어진 116.193유로에 거래되고 있다.

가격이 떨어진 것은 유럽 국가들이 이미 저장탱크에 충분한 양을 비축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로 서방을 압박하자, 유럽연합(EU)은 역내 국가들에 "11월 1일까지 모든 가스 저장시설의 80%를 채우라"고 권고했다. 이후 각국은 물량 확보 경쟁을 시작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저장고를 채웠다. 유럽의 가스 비영리 협회 GIE에 따르면, EU의 평균 가스 비축률은 지난달 말 기준 94.68%에 이르렀는데, 영국·벨기에·포르투갈은 100%를 달성했고, 유럽 최대 가스 소비국 독일도 98.82%의 탱크를 채웠다.


유럽 천연가스 가격 하락 요인. 김대훈 기자

유럽 천연가스 가격 하락 요인. 김대훈 기자


이렇게 저장고가 가득 차자, 높은 가격을 노리고 유럽으로 향하던 액화천연가스(LNG) 선박들이 갈 곳을 잃었다. 현지 외신에 따르면, 하역이 불가능한 LNG 선박들은 저장시설 인근을 배회하고 있다고 한다. 어떤 선박은 비용 절감을 위해 돈을 얹어주며 LNG를 넘기겠다고 했고, 일부 선박은 유럽을 지나 아시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따뜻한 날씨로 소비량 감소

날씨도 한몫을 했다. 현재 유럽은 따뜻한 날이 이어지고 있고, 예보상으로도 올겨울은 예년보다 높은 기온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여기에 더해 평년보다 바람이 많이 불면서 풍력 생산 전기량이 증가했다. 유럽은 풍력이나 태양력 에너지를 먼저 소비하고, 바람 및 일조량이 적으면 가스 발전소를 가동한다. 풍력 전기가 많아질수록 화석연료에 덜 의존하는 구조다.

러시아를 대신해 노르웨이가 생산량을 늘린 것도 공급 확대에 보탬이 됐다. 지난달 1일 노르웨이에서 발트해를 건너 폴란드까지 이어지는 가스관(발틱 파이프)이 가동되면서 노르웨이가 EU 국가에 보낼 수 있는 천연가스 양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미국에서 수입하는 물량도 작년보다 2배 늘었고, 각국 정부의 가스 절약 정책도 효과를 발휘하는 중이다.

넘치는 공급은 일시적 현상

유럽 전체에서 낮아진 러시아 가스 의존도. 유럽위원회 제공

유럽 전체에서 낮아진 러시아 가스 의존도. 유럽위원회 제공

다만 전문가들은 가격 하락은 일시적 현상일 뿐 원활한 공급 상황이 길게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실 유럽이 가스 저장고를 비교적 수월하게 채울 수 있었던 것은 적은 양이어도 러시아 가스가 공급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그나마 공급의 한 축을 담당하던 러시아산 물량이 거의 사라지게 된다.

생산지에서 가스를 액화해 부피를 줄였다가 공급지에서 다시 기화시키는 LNG 설비 문제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배로 수입하는 LNG는 가스관으로 들여오는 파이프 천연가스(PNG)와 달리 터미널, 저장시설, 기화시설 등 인프라 구축이 선행돼야 한다. 오랜 기간 러시아산 PNG에 의존한 유럽은 이런 시설이 여전히 부족하다.

중국이 수입 늘리면 공급 부족

특히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변수는 중국이다. 중국은 지난해까지 세계 최대 LNG 수입국이었으나, 올해는 코로나 봉쇄정책과 경기 침체로 인해 신규 구입 계약을 사실상 유보 중이다. 에너지 분야 전문가인 유승훈 서울과기대 교수(창의융합대학 학장)는 유럽의 따뜻한 날씨와 중국 경기침체가 가스 가격 하락 원인이었다고 진단하면서도 "일시적 현상일 뿐 방심하긴 이르다"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공급이 한정된 상황에서 중국이 다시 LNG 구매에 나선다면 국제 가격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동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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