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룰라, 보우소나루에 1.8%포인트 차이 '신승'
국민 통합·경제난 극복·기아 탈출… 해결 과제 산적
“오늘 우리는 전 세계에 알린다. 브라질이 돌아왔다고!”
중남미 ‘좌파 대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77) 브라질 전 대통령이 브라질 대선에서 승리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브라질 역사상 첫 3선 대통령이다. 극우 성향 자이르 보우소나루 현 대통령의 무능과 부정부패에 분노한 민심이 폭발한 결과다. 하지만 룰라에게 승리를 만끽할 여유는 없다. 선거 기간 둘로 쪼개진 국민 통합과 경제 위기 극복 등 난제가 쌓여 있다.
우파 무능에 좌파 부활… 민심 분열에 ‘룰라 신화’도 위태
30일(현지시간) 치러진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노동자당 소속 룰라가 득표율 50.9%를 기록하며 자유당 후보인 보우소나루(49.1%)를 꺾었다. 2003~2010년 대통령 2연임을 했던 룰라는 12년 만에 권좌로 복귀해 내년 1월 1일부터 세 번째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다.
두 사람의 득표율 차이는 1.8%포인트로, 1989년 브라질에 직선제가 도입된 이후 가장 작았다. 빈곤층, 여성, 흑인, 가톨릭 신자는 룰라를 지지했고, 부자, 남성, 백인,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는 보우소나루를 찍었다. 양 진영 간 이념 대결이 극심했다는 뜻이다.
룰라에게는 ‘국민 분열 극복’이라는 난제가 주어졌다. 이에 룰라는 승리 연설에서 “오늘 유일한 승자는 브라질 국민이다. 나는 2억1,500만 브라질인을 위해 일할 것이다. 브라질은 두 개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이라고 강조했다.
극단주의 행보로 ‘열대의 트럼프’라 불린 보우소나루는 ‘재선에 실패한 첫 브라질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임기 4년간 친기업 정책, 언론 혐오, 아마존 열대우림 난개발, 온갖 비리 의혹으로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엔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맹신하고 봉쇄 정책을 거부하는 등 허술한 대응으로 70만 명을 숨지게 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이번 선거 결과엔 룰라에 대한 호감보다는 보우소나루를 막아야 한다는 반발심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다르게 말하면, 룰라는 83%라는 경이로운 지지율로 두 번째 대통령 임기를 마친 12년 전보다 싸늘해진 시선 속에 취임하게 됐다는 얘기다. 2018년 뇌물 수수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가 2020년 대법원에서 실형 선고 무효 판결을 받긴 했지만, 여전히 의혹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빈민촌에서 태어나 10대 때부터 금속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산업재해로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은 노동조합 지도자 출신 대통령’이라는 ‘흙수저 신화’가 계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 적지 않다.
경제 위기 속 ‘룰라 3기’ 출범… “장기 비전은 부족”
‘1, 2기 룰라 정부’는 2000년대 중반 국제 원자재 가격 급등과 원자재 수출 증가,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로 경제 호황을 누렸다. 취임 전 2.7%였던 브라질 경제성장률은 퇴임 당시 7.5%로 올랐고, 경제규모는 세계 12위에서 8위로 껑충 뛰었다. 재정적 뒷받침이 된 덕분에 룰라 정부의 ‘기아 제로’ 정책도 추진력을 얻어 8년간 4,000만 명을 빈곤에서 구했다.
이후 브라질 경제는 퇴행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브라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평균 0.3%에 그쳤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롯된 글로벌 경제 위기 탓에 올해 4월엔 연간 물가상승률이 12%를 넘기도 했다. 8월에는 8.73%로 다소 하락했지만, 물가를 잡느라 기준금리는 지난달 13.75%로 급등했다.
빈곤과 불평등도 심화했다. 현재 극심한 기아 상태에 놓인 인구가 3,300만 명, 빈곤층은 1억 명에 달한다. 30년 이래 최고치다. 룰라는 “브라질은 세계 3위 식품 생산국이자 동물성 단백질 최대 생산국인데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다”며 “우리는 모든 브라질인에게 하루 세 끼 식사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약속했다.
미래 산업을 지탱할 인적 자본 축적, 첨단기술 개발, 지적재산권 창출 등 룰라의 장기적 국정 비전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 싱크탱크 외교협회 섀넌 오닐 선임연구원은 “재산업화와 공공 프로젝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은 남미 정치가 21세기 현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며 “남미 국가들의 의제는 여전히 20세기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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