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취해소제 30년史①]
음료에서 젤리나 환, 아이스크림까지 다양
30년 새 매출 100억→2019년 2,500억 성장
해장국집 늦게 문 열고 한의원 덜 찾기도
숙취해소제 '컨디션'이 서른 살이 됐다. 1992년 출시 당시만 해도 직장인들은 술 마신 뒤 콩나물국이나 북엇국, 꿀물을 마시며 속을 달랬다. 당시 CJ제일제당 제약사업부는 3040 직장인 공략을 위해 '숙취해소 음료' 개념을 처음 썼다.
이 낯선 음료는 이후 날개 돋힌 듯 팔렸다. 출시 후 1년 동안 팔린 컨디션은 무려 1,000만 병. 당시 국내 음주 인구 700만 명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1인당 1.4병씩 마신 셈이다. 지난 30년 동안 팔린 컨디션은 약 6억9,000만 병. 컨디션 병을 한 줄로 늘어놓으면 2만7,600㎞에 달한다. 이는 지구 반 바퀴 둘레에 해당하는 길이다.
30년이 흐른 지금도 과연 '컨디션을 마시면 정말 술이 깨는가'에 대한 궁금증은 여전하다. 이 음료의 정체성이 임상시험을 필요로 하는 '의약품'이 아닌 '식품'인 한계다.
그럼에도 컨디션이 열어젖힌 숙취 해소 제품 시장은 빠르게 자랐다. 출시 첫해 100억 원대에서 2년 만에 일곱 배 늘어난 700억 원 규모로 커졌다. 숙취해소 효과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음주 다음 날 이 신제품을 챙기는 것이 일종의 습관처럼 굳어지면서다. 이후 연평균 10%씩 꾸준히 성장해 2019년엔 시장 규모가 2,500억 원을 넘어섰다.
출시 초기 유통 채널로 약국을 선택한 점은 프리미엄 이미지를 만든 '신의 한 수'였다. 당시 한 병에 300원이던 대표 자양강장제와 비교하면 결코 저렴하지 않은 가격(2,500원)이었지만, 약사의 목소리를 빌려 효능을 알리는 동시에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도 믿고 마실 수 있는 프리미엄 음료로 자리매김했다.
식품사·제약사 숙취해소제 도전하며 시장 키워
숙취해소 음료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며 안착하자 식품사와 제약사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고 음료뿐이던 숙취해소제의 제형은 젤리나 환,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며 영역을 넓혔다.
하지만 오래 버틴 업체는 그리 많지 않다. 레디큐와 레디큐츄를 판매하는 제약사 한독 관계자는 "여러 제약사나 식품사가 숙취해소제에 한번쯤 도전했지만 조용히 사라진 곳이 많다"며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강자들이 있고, 새 제품이 고객의 선택을 받기엔 장벽이 높아서 오랜 기간 유지하고 있는 제품은 몇 안 된다"고 설명했다.
해장국집은 '울상'… 새벽 4시 반이면 열었는데, 이젠 오전 10시로
이처럼 제약사와 식품사들엔 새로운 금광을 찾은 듯한 희소식이었지만, 숙취해소제 등장이 반갑지만은 않은 이들도 있다. 바로 해장국을 파는 식당들이다. 술을 마신 다음 날 아침, 일찍 문을 연 식당에 들러 뜨끈한 국물로 속을 풀고 출근하는 '해장족'이 줄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중구 잼배옥 사장 김경배·윤경숙씨 부부는 3대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김씨는 "아버지가 가게를 운영하시던 30년 전엔 오전 4시 반~5시면 문을 열었다"며 "해장을 하러 온 아침 손님이 매우 많았다"고 떠올렸다. 메뉴는 해장국 아니면 설렁탕이었다. 윤씨는 "손님들은 금방 드시고 가셨다"며 "새벽부터 줄 서 있으니 손님이 숟가락을 한 번 내려놓으면 다 드셨죠 하는 대답 듣기 전 치우고는 새 손님을 받아야 할 정도로 아침이 바빴다"고 설명했다. 하루 중 해장하러 들르는 이른 아침 손님이 가장 많아, 직원들에게 가게에서 숙식을 제공할 정도였다.
2001년 김씨 부부가 식당을 이어받아 운영하는 사이 해장 문화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숙취해소제가 보편화되면서 20여 년 전부턴 근처 설렁탕, 해장국 가게들도 하나둘씩 사라졌다. 아침 손님이 줄자, 6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잼배옥도 오전 7시에서 다시 오전 10시로 문 여는 시간을 늦췄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저녁 회식이 줄었고, 모이더라도 예전과 비교하면 빨리 헤어지니 다음 날 해장도 간편해졌다. 윤씨는 "요즘은 숙취해소제로 해장을 하거나 아메리카노와 베이글로 해장하는 등 방법도 다양하다"고 전했다.
바쁜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 간편한 해장 원해
바쁜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도 아침풍경을 바꾼 또 다른 이유다. 한방 숙취해소제 '술깸'을 개발한 장가동 영한네이처 대표(한의사)는 "맞벌이 부부가 지금처럼 많지 않던 20년 전엔 집에서 북엇국을 끓여 먹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이들 등원시킬 시간도 부족하니 아침식사도 잘 안 한다"며 "바쁜 아침에 차라리 30분 더 자고 해장은 한 포로 끝내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숙취해소제의 원료도 다양해지며, 한방 숙취해소제도 온라인에서 입소문을 타고 팔리고 있다. 장 대표는 "숙취로 고생하는 환자에게 처방을 해주다가 한의원에 오는 수고를 줄이게 대중 숙취해소제를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9년 7월 출시된 술깸은 판매 채널이 온라인뿐이지만 "술 먹은 지 잊을 정도로 속이 편해 숙취해소제계의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는 후기까지 있을 만큼 충성 고객이 많다.
한방 숙취해소제의 등장에 다른 한의사들의 불만은 없을까. 간편한 숙취해소제가 대세라지만, 여전히 한의원을 찾는 이들은 있다. 장 대표는 "시중에서 파는 제품으로는 극복이 안 될 만큼 심한 경우 처방을 받으러 한의원에 온다"면서 "한의원에 선 약재를 쓰니 효과가 높기 때문에 꾸준히 찾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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