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위기국면으로 치닫는 한반도
사용가능한 전술핵 운용단계에 든 北
국가위기 외면하는 정치 존재가치 없다
정치라는 게 결국 먹고사는 문제를 다루는 행위임은 맞다. 이념, 명분 따위로 치고받아도 끝내 정권의 운명을 가르고 평가의 척도가 되는 게 경제 성적표다. 트럼프 현상도 그렇고 최근 영국의 최단기 총리 낙마, 유럽이나 남미 등의 잦은 좌우정파 교체도 다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경제보다 중요한 것이 국방 안보 외교다. 대부분 나라에서 이런 분야 역시 경제와 연관된 국익의 확대 보호와 관련한 것이지만 우리에겐 당장의 생존에 직결된 영역이다. 말할 것도 없이 북한의 존재 때문이다. 우리 헌법에만 특별하게 국가의 독립, 영토의 보전, 국가의 계속성을 대통령의 제1책무로 명기한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북한의 도발 양상은 한반도가 1950년 이후 가장 위험한 국면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9년 하노이회담 뒤 본격화한 미사일 도발은 올 들어서는 거의 매주, 특히 9월 이후에는 2~3일에 한 번꼴로 상시화했다. 지난해까지는 그래도 다양한 미사일의 개발, 개량, 시험 수준으로 눅여보는 시각이 꽤 있었다.
그러나 올 들어서는 국면이 바뀌었다. 무차별적 난사 수준의 도발은 이미 완성된 무기체계를 실전배치하고 상황별로 운용 점검하는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조만한 이뤄질 7차 핵실험은 더는 폭발력 과시가 아닌 소형·경량화 기술을 확인하는 방식일 것이다. SLBM과 초음속미사일을 포함, 모든 핵투발 기술을 보유한 북한미사일은 쓸 수 없는 전략무기에서 국지적으로 언제든 쓸 수 있는 전술무기가 되는 것이다.
재래식 전력 우위는 의미를 잃었다. 김정은은 7월 한국의 무기개발을 비웃으며 “남조선은 (절대병기를 소유한) 우리에 비한 군사적 열세를 결단코 만회할 수 없을 것”이라며 위세를 부렸다. 전 같으면 움찔했을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와중에도 미사일 도발을 하고, 한동안 피하던 NLL 도발을 거침없이 재개한 것도 이런 자신감의 발현이다. 더욱이 김정은을 고무시킬 푸틴의 전술핵 사용과 시진핑의 대만통일 시도도 현실 영역 안에 들어왔다.
여기서 묻는다. 초유의 국가 위기 상황에서 우리 정치는 어디서 뭘 하고 있나. 국정감사 한 달에도 이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국방위조차 서해피격 논란과 BTS 병역문제 따위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외교위도 장관 거취 공방만으로 끝났다. 국감 전체가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으로 시작해 내내 전 정권과 현 정권 간 네 탓 싸움으로 일관했다. 절해고도 갈라파고스에 갇힌 무감(無感)집단들이다.
당장 독자 핵무장이나 미 전술핵 재배치 등이 불가하다면 최소한 버금가는 안전보장책 마련에 국방 외교력을 총동원해야 하는 시기다. 그나마 유효한 ‘3축 체계’를 정교하게 다듬어 북한의 망상을 재고하게 만드는 게 먼저다. 첫 단계인 ‘킬체인’의 고도화를 위해 일본의 정보자산까지 활용하는 데 주저할 이유도 없다. ‘친일국방론’은 위기감도, 식견도 없는 정치적 프로파간다일 뿐이다. 나아가 확장억제와 관련해 립서비스 수준이 아니라 미국이 어떤 상황, 어떤 단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핵 억지력을 동원할 수 있는지 구체적 로드맵을 한미 간에 공유토록 해야 한다. 5년 만에 재개된 지난달 확장억제전략협의체 회의가 성과 없이 끝났다는 건 이 역시 지난한 과제임을 일깨운다.
정치란 본래 국가 현안의 우선순위를 설정하고 국가역량과 가용자산을 어떻게 배분, 투입해야 하는지를 판단하고 실행하는 영역이다. 북한과 중·러, 심지어 애매한 미국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안팎의 모든 시그널이 전례 없는 위기를 가리키는 지금, 우리 정치는 도대체 어디에다 정신을 팔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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