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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을 파는 괴산의 작은 서점

입력
2022.10.26 21: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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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지음, '옥수수밭에서 배운 글짓기'

편집자주

'문송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건 인문학적 교양입니다. '문송'의 세계에서 인문학의 보루로 남은 동네책방 주인들이 독자들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한적한 농촌마을에 책방을 처음 열었을 때 무슨 특별한 걸 생각한 건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건 그저 책방인 어떤 공간, 보통의 서점이었다. 좋은 책이 있어서 그걸 널리 소개하고 팔고 싶어 하는 어떤 사람(나, 판매자), 지금 내게 꼭 필요한 책을 사고 싶은 어떤 사람(독자, 구매자), 이 둘이 만나 대화를 통해 책을 사고파는 어떤 현장(서점). 그곳에 주인으로 있고 싶었다. 내가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책 역시 전국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보통의 책이었다. 그런데 책방을 열고 보니 의외로 이런 질문을 많이 받게 되었다.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특별한 책은 없나요?"

전국에서 구태여 이 멀리 농촌마을 작은 책방을 찾아온 이들은 온라인으로 느낄 수 없는 소중한 체험을 원했고 이곳에 와야만 구입 가능한, 이곳에서 구매했을 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특별한 무언가를 사고 싶어 했다. 나는 보통의 서점을 꿈꾸었지만 찾아온 손님들은 이곳에서 특별함을 가져가고 싶어한 것이다.

그 간극을 나는 서점이 속한 지역의 콘텐츠로 메우고 싶었다. 대전을 가면 특정 빵을 사고, 부산엘 가면 어묵을 사듯이 숲속작은책방이 있는 괴산에 오면 괴산의 이야기를 사 갔으면 했다. 그러나 지역의 이야기는 혼자 짓는 것이 아니어서 지역에 어우러져야 하고 삶이 묻어야 한다. 함께한 시간과 이웃이 필요한 일인 것이다. 우리 책방에도 세월이 흐르자 드디어 함께 이야기를 지을 이웃이 생겨났다. 인구 3만8,000의 농촌마을에 출판사가 네 곳이나 생긴 것이다. 서울 아닌 지역을 이야기하는 책, 도시 아닌 농촌의 꿈을 꾸는 책, 숲길을 걸으며 우리의 내일을 생각하는 책을 만들어 내는 농촌마을의 출판사들. 우리는 뜻을 모아 '괴산책문화네트워크'를 만들었고 그들이 만든 책들을 숲속작은책방 서가에 꽂는다.

괴산의 1인 출판사 '열매문고'가 올여름에 펴낸 '옥수수밭에서 배운 글짓기'는 요즘 내가 가장 많이 권하는 책이다. 세상에 글쓰기에 관한 책은 많지만 옥수수 농사를 지으며 글을 짓는 책은 없으니 주제와 내용이 특별하다. 흔히 글 쓰는 일을 농사에 비유하곤 하지만 농사 경험이 없는 책상물림 작가가 머리로 지어낸 글과, 직접 농사를 지으며 글을 짓는 작가의 글은 얼마나 다른가.

괴산 대표 작물인 옥수수는 심어서 수확까지 석 달이 걸린다. 저자 이후는 그 석 달을 글 농사를 짓고 싶은 이들을 위한 워크숍 기간으로 정했다. 참가자들은 옥수수가 익어 가는 석 달의 시간 동안 글을 지었다.

1주 차에 농사 계획을 세우며 자기소개를 했고, 2주 차 밭을 구하고 정리하는 동안엔 글을 쓸 수 있는 자기만의 방에 대해 생각했다. 3주 차 씨앗을 준비하면서 나만의 글쓰기 소재를 정했고 4주 차에 비로소 씨를 뿌리면서 일단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모종을 심으면서 퇴비를 주면서 농사를 방해하는 잡초를 뽑으면서도 옥수수와 함께 이야기밭이 영글어 갔다. 순을 지르고 수확하고 갈무리를 하니 비로소 글도 정리되고 퇴고를 하고 완성이 되었다. 그러고 나면 갓 수확한 옥수수를 김 나는 솥에 쪄서 맛나게 먹는 기쁨의 시간이 온다.

책을 팔지만, 또 남에게 팔 책을 쓰기도 하는 저자로서 나는 이 책을 한 장 한 장 경이롭게 읽어 갔다. 그러고는 판매대에 올려 둔다. 이제 숲속작은책방 서가에는 괴산 사람들이 만든 괴산의 이야기가 담긴 로컬 잡지도 있고, 괴산으로 귀촌한 청년이 펴낸 '괴산 일기'도 있고, 괴산의 농부가 쓴 농업과 자연에 대한 책도 있다. 이 책들은 물론 전국 어디서나 구매 가능하다. 그러나 괴산에 와서 옥수수와 고추와 절임배추 보따리에 얹어 이 책 한 권을 사 들고 가는 일은 더 특별하고 즐거운 경험이 될 거라고 확신한다. 앞으로도 지역의 이야기들이 가을 무 수확하듯 쑥쑥 뽑혀 나와 전국으로 퍼져 가면 좋겠다.

숲속작은책방

  • 백창화 대표

숲속작은책방은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에 있는 작은 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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