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로 망명한 태권도 선수 파르시디 인터뷰
히잡 벗기 위해 망명하는 여성 선수 늘어
"해외에서도 연대 시위...조국 자유 얻길 희망"
"히잡을 벗고 경기에 나선 클라이밍 선수 엘나즈 레카비(33)는 민족 영웅이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태권도 여자 은메달리스트인 파르시디(32)는 24일(현지시간) 독일 공영 도이체벨레와의 인터뷰에서 "레카비는 이슬람 독재 정권에 맞서 반대 의사를 용기 있게 드러냈다"며 그의 행동을 치켜세웠다.
레카비는 지난 16일 서울에서 열린 국제스포츠클라이밍연맹 아시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히잡을 벗었다가 '조기 송환'됐다. 히잡 쓰지 않을 자유를 외치며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는 이란 내 반정부 시위에 연대했다는 혐의다.
파르시디 역시 과거 같은 고초를 겪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손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등 복장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경찰에 구금됐다가, 국가대표 자격도 잃었다. 그는 2019년 독일로 망명한 뒤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히잡을 벗기 위해, 국적을 버려야 했던 것이다.
고통스러운 선택에 내몰린 건 파르시디뿐만이 아니다. 이란 여성 최초이자 유일한 올림픽 메달리스트인 태권도 선수 키미아 알리자데(24)도 2020년 이란을 떠났다. 당시 "이란에서 억압받는 수백만 명 여성 중 하나"라며 독일로 망명한 알리자데는 2020년 도쿄올림픽 대회에선 히잡을 벗은 채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국제대회 출전을 했다가 망명하는 선수들이 늘어나자, 이란 당국은 출국하는 선수들에게 귀국을 보장하는 담보를 남기도록 강요하고 있다. 레카비도 서울로 오기 전 3만5,000달러(약 5,000만 원)와 가족의 재산을 팔 수 있는 전권을 이란산악연맹에 넘긴 것으로 알려졌다. "히잡이 실수로 벗겨졌다"는 레카비의 해명이 당국의 강요에 의한 것이란 강한 의심을 사는 이유다.
파르시디는 "레카비의 행동은 이슬람 정권의 주요 금기를 깼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분명히 이란 당국의 엄청난 압박 아래 이뤄진 강제 자백"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레카비는 이제 정권의 감시를 받게 됐다"며 "투옥되거나 선수 생활이 중단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레카비는 현재 가택 연금 중으로 전해진다.
파르시디는 여전히 고국의 상황에 귀 기울이고 있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22) 사건이 촉발한 시위에 눈 감을 수 없는 건 "내가 아미니가 될 수 있었다"는 깊은 공감 때문이다.
그는 "이란에 남아 있는 가족들은 지금 거리로 나가 자유를 위해 싸우고 있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독일에서 이란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지난 주말 베를린에선 8만 명이 모인 연대 시위가 있었다. 이란 디아스포라가 주도한 서방의 시위 중 가장 큰 규모다. 파르시디는 "모두가 현재 이란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지켜봐야 한다"며 "나의 동료 시민들이 이슬람 정권과의 대결에서 승리해 나의 조국이 마침내 자유를 얻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당국의 강경 진압에도 불구하고 "여성, 생명, 자유"를 외치는 이란 반정부 시위 기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이란 인권운동가통신(HRANA)에 따르면 33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248명이 시위로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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