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그 어떤 인생을 살아도 나는 너를 구할 거야" 에에올이 건네는 위로 [세상의 관점]

입력
2022.10.25 20:00
0 0

<10>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편집자주

안녕하세요. '허스펙티브'는 평등하고 다정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공간입니다. '세상의 관점'은 이혜미 기자가 직접 보고 읽고 느낀 콘텐츠를 추천하는 허스펙티브 속 코너예요.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한눈에 허스펙티브의 풍성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습니다.

▶ 뉴스레터 구독하기 https://www.hankookilbo.com/NewsLetter/herspective

※ 이 기사에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핵심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공식 포스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공식 포스터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우리가 다정해야 한다는 거예요. 제발, 다정하게 대하세요. 특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 말이에요.

영화 중 웨이몬드의 대사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139분입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에에올)'의 러닝타임은 결코 짧지 않지만, 도중에 화장실을 찾지 않도록 단단히 마음먹어야 할 겁니다. 멀티버스(다중우주론)를 다룬 이 영화의 세계관이 무척 변화무쌍해, 도중 화장실에 다녀온 10분 사이 어떻게 전개가 튀어있을지 모르거든요. 이 실험적인 영화의 장르를 어찌 하나로 정의할 수 있을까요. 공상과학(SF)? 액션? 코미디?

3부로 이뤄진 영화의 숨 가쁜 속도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엔딩 크레디트와 마주하게 되는데요. 검은 화면에 출연진과 제작진 명단이 빽빽하게 나열됨과 동시에 "사랑해(I love you)"라는 반복적인 가사의 사운드트랙이 재생됩니다. 2시간이 훨씬 지나 영화관의 조명이 켜지는 순간 '나와 다른 존재를 사랑해야지'라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화 스틸컷.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화 스틸컷.

에에올은 중국계 미국인 에블린(량쯔충)의 엉망진창 하루를 정신없이 그립니다. 온화하지만 생활력 없고 우유부단한 남편 웨이몬드(키 호이 콴)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고, 억척스러움으로 큰 빨래방 사업을 일궜지만 그의 오늘은 좀처럼 녹록하지 않습니다. 부주의한 세금 신고로 인해 세무조사를 받아 모든 사업체가 압류될 처지에 놓였고, 설상가상 남편은 이혼 서류를 내밀고요. 외동딸은 사사건건 의견 충돌을 빚다 집을 나가 버리고, 여자를 사랑한다며 애인을 데려옵니다. 에블린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러던 에블린의 눈앞에 남편과 똑같은, 그러나 능력치는 완전히 다른 웨이몬드가 나타납니다. 자신을 '알파버스 세계의 웨이몬드'라 설명하는 그는 "멀티버스로 구성된 이 우주에는 수천, 수만의 에블린이 존재하고 있으며, 인생의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존재들이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동시에 그는 "세계를 소멸하려는 악당 '조부 투바키'를 없애야 하고, 그것은 에블린만이 할 수 있다"며 다중 우주를 넘나들 수 있는 '버스 점핑'이라는 기술을 가르칩니다. 에블린은 이 기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각종 세계의 에블린이 가진 능력치로 세상을 구할 유일한 존재로 묘사됩니다.

그저 '보통의 액션 히어로물' 아니냐고요?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영화는 급격하게 방향을 틉니다. 조부 투바키가 하나뿐인 딸 조이(스테파니 수)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죠. 아무리 수천, 수만 개의 멀티버스에 자신의 딸이 수천, 수만의 얼굴을 하고 살고 있다고 한들, '엄마 에블린'은 단 한 명의 딸도 죽일 수 없습니다. 그가 '누군가를 절멸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둠을 사랑으로 밝히며 아무도 해치지 않고 모두를 구하는 방식을 택한 이유입니다.

나는 당신을 죽이기 위해 당신을 찾아다닌 게 아냐. 그저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보고 느끼는 사람을 찾았을 뿐이야.

영화 속 조부 투바키의 대사

윤리 감각을 잃은 혼돈 그 자체로 묘사되던 악당 조부 투바키는, 사실 남들과 다른 것을 느끼고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세상과 불화하며 깊은 허무 속에 살았던 딸 조이였습니다. 그런 그를 온전히 바라보고 어둠에서 끌어낼 수 있는 건 '엄마 에블린'뿐이었죠.

"그 어떤 인생을 살아도 나는 너를 구할 거야"라는 영화 포스터 속 문구는, 에블린의 딸을 향한 무조건적인 사랑이자 지지의 표현입니다. 동시에 영화를 보는 모두에게 '그 어떤 인생을 살아도, 사랑과 친절이 당신을 구할 것'이라는 따뜻한 위안을 건넵니다. 비록 현실 세계에서 멀티버스를 경험할 순 없지만, 나와 다른 이를 다정하게 대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충분히 누군가의 세상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그래픽=박길우 디자이너



이혜미 허스펙티브랩장 herstor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