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부 "해외도 이런 법 없어", 법안 반대 뉘앙스
노동계 "도입 배경 외면, 모호한 결과 나열"
한노총도 비판 "법 개정 필요하다고 보여"

18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노란봉투법 개정 촉구 손배사업장 긴급 기자회견'에서 정의당 이은주 의원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노조의 쟁의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손배소)을 제한하는 '노란봉투법' 도입을 놓고 노동계와 재계가 갈등을 빚는 시기에 정부가 14년간 노동자를 상대로 제기된 국내외 손배소 조사 결과를 내놨다. 불법적 쟁의행위에 대해서만 합리적인 판결이 이뤄졌고, 해외에서도 비슷하다는 내용이라 사실상 정부가 노란봉투법 필요성에 의문을 표한 것이다. 노동계는 "중립적이고 공정해야 할 정부가 의도적이고 악의적으로 정보를 취사선택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동자 손해배상 책임, 불법+인과관계 있어야 인정"
고용노동부는 21일 '아카이브(손잡고 운영 사이트)' 자료, 한국노총 법률원, 언론·지방관서를 통해 2009년부터 올해 8월까지 기업·국가·제3자가 노동조합·간부·조합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가압류 사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노란봉투법 입법 논의가 활발해진 지난 8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야당 위원들이 이정식 고용부 장관에게 실태 파악을 주문한 게 시작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1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노란봉투법’ 관련 여야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조사 결과 제기된 손배소는 총 151건이고 취하·조정·화해를 제외한 73건은 판결이 이뤄졌다. 이 중 노동자의 손해 책임을 인정한 '인용'은 49건(67.1%), 인용액은 총 350억1,000만 원이었다. 책임을 부정한 '기각'은 24건(32.9%)이었다.
법원은 노동자가 불법 쟁의행위나 업무방해 등을 인정한 46건 중 39건에 대해 책임을 물었다. 나머지 7건은 불법적이어도 손해 발생과 '상당인과관계'가 없다고 봐 책임을 면제했다. 또 책임을 인정한 39건 중 26건(66.7%)은 노동자의 배상액을 20~90% 깎아줬다. 고용부는 "불법(쟁위) 행위라도 상당인과관계가 있어야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면서 "배상 책임이 인정돼도 사안에 따라 사용자의 귀책사유, 불법 행위의 동기 등을 참작해 책임을 경감했다"고 밝혔다.
특히 법원이 '불법 쟁의행위'의 기준을 주로 수단에 두고 있다고 고용부는 설명했다. 불법 쟁의행위임을 판시한 28건 중 25건(89.3%)은 수단이 부당한 경우였는데, 22건(88%)이 위력에 의한 사업장 점거였다. 16건은 그 과정에서 폭행·상해가 수반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사업장 점거에 의한 생산라인 중단 등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인용률이 90.3%로 높았다.
고용부 "해외에서 노란봉투법 못 찾아"...노동계 "유리한 것만 골라내"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 회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법 개정과 관련한 운동본부의 법안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는 국회 요청에 의해 조사했고 사실을 적시했다는 입장이지만 사실상 노란봉투법에 반대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법원이 기존 법체계 안에서 합리적으로 쟁의행위의 위법성과 손해배상 책임 여부를 따지고, 책임이 있더라도 동기를 참작해 경감하는 등 현행법이 노동자를 괴롭히기 위한 '손해배상 폭탄'이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것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특히 고용부는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해외의 법체계도 우리와 비슷하다고 부연했다. 고용부는 "대부분 국가에서 폭력, 파괴행위 외에 사업장 점거 등도 위법하다고 판단해 우리나라처럼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하고 있다"면서 "불법행위에 책임이 있는 경우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개인의 책임이 인정되고, 손해배상 범위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입법례는 찾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노란봉투법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노동계는 즉각 반발했다. 해외 입법 환경과 우리나라가 동일하지 않은데, 고용부가 배경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결과만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용우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해외는 손해배상 청구도 드물고, 법원에서 이를 쉽사리 인정하지도 않는다. 또 법원의 해석과 함께 노사 간 단체협약을 통해 손해배상 상한액을 정하는 등 규율이 이뤄지고 있어 노란봉투법과 같은 제도를 만들 유인이 없는 것"이라며 "노사관계에서 중립적이고 공정한 위치에 서야 할 정부가 의도적, 악의적 방식으로 정보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또 "분석 대상으로 삼은 판결의 선별 기준과 분석 틀도 모호하다"고 덧붙였다.
그간 노란봉투법에 대해 언급하지 않은 한국노총도 즉각 논평을 내고 "우리나라처럼 손배소 폭탄을 투하해 보복성으로 노조를 탄압하는 곳은 전무하고, 해외에서는 파업에 대한 기업의 손배소 자체가 드문 일인데 이번 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다"며 "조사 내용은 우리 법원 판결이 사업장 점거에 지나치게 인색하고, 과도한 인용액은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손해배상을 청구한 기업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고 보여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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