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부터 여성 정체성... 호르몬 투약에 수술도
법원 "말레이시아 가면 국가적 박해" 난민 인정
말레이시아에서 나고 자란 A(48)씨는 열 살 때쯤 처음으로 여성 정체성을 느꼈다. 그는 15세 때부터 여성 외모를 갖추기 위해 호르몬을 투약했고, 20대 중반엔 태국을 찾아 가슴 보형물 삽입 수술도 받았다. A씨는 그러나 성 정체성을 자유롭게 드러낼 수 없었다. 남성 간 동성애와 크로스드레싱(생물학적 성과 다른 성별의 복장을 착용하는 행위)은 이슬람교가 국교인 말레이시아에선 불법이기 때문이다.
A씨는 2017년 말레이시아를 떠나 한국에서 난민 신청을 했다. ①A씨가 2014년 화장을 하고 여성 옷차림을 한 채 지인 결혼식장 축하 파티에 참석했다가 경찰에 체포돼 유죄를 선고받았고 ②동성 성관계 처벌 형량이 높아지는 등 A씨를 향한 위협이 커지자 한국행을 택한 것이다. A씨는 "트랜스젠더 여성으로 성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은데, 말레이시아로 돌아가면 박해를 받을 수 있고, 국가의 보호도 기대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법무부는 그러나 2019년 난민 신청을 거절했다. 난민협약과 난민의정서에 비춰보면 말레이시아로 돌아가면 박해받을 것이란 A씨 주장이 충분한 근거로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A씨가 제기한 이의제기를 법무부가 기각하자, A씨는 서울출입국·외국인청장을 상대로 소송전에 나섰다.
1심은 지난해 12월 법무부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은 "A씨는 고교 졸업 뒤인 1991년부터 여성처럼 다녔고,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밝혔는데도 취업에 성공했다"며 "A씨가 2019년 여성스러운 얼굴로 성별이 남성인 여권을 발급받아 별 문제 없이 출국까지 한 점을 미뤄보면 말레이시아에서 박해받을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은 그러나 A씨를 난민으로 인정해 줘야 한다고 봤다. 서울고법 행정1-2부(부장 김종호 이승한 심준보)는 지난 18일 "미국 국무부 등 다수 기관의 인권상황 보고서에 말레이시아에서 트랜스젠더에 대한 국가적 수준의 제재가 가해지고 있는 정황이 기재돼 있다"며 "A씨도 국가권력에 의해 신체 자유와 재산을 침해당하는 박해에 직면한 경험을 갖고 있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A씨를 둘러싼 위협이 단순히 성 정체성으로 인한 사회적 제약만으로 보긴 어렵다"며 "인간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와 차별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난민협약상 박해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