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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달러 진출'

입력
2022.10.20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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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중국계 미국 배우 애나 메이 웡의 얼굴이 새겨진 25센트 동전. 미국 조폐국

중국계 미국 배우 애나 메이 웡의 얼굴이 새겨진 25센트 동전. 미국 조폐국

애나 메이 웡(1905~1961)은 아시아계 최초로 미국 영화계에서 성공한 배우다. 중국계 이민 2세로 할리우드가 태동하던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배우를 꿈꿨던 웡은 열일곱 살에 처음 주연을 맡은 이래 2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각광을 받았다. 인종차별이 강고하던 시절이라 아시아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난 배역은 맡기 힘들었고, 남성 백인 배우와의 키스신이 금지돼 캐스팅을 취소당하거나 한동안 유럽에서 활동해야 했다.(이 시기에 '전설' 로런스 올리비에와 연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련에 맞서 말년까지 배우 경력을 이어갔고 이른 죽음을 맞기 한 해 전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했다.

□ 웡이 사후 60여 년 만에 또 한 번 '아시아계 최초' 기록을 썼다. 이달 17일 발행된 미국 쿼터(25센트 동전) 뒷면에 큰 눈이 아름다운 웡의 얼굴이 새겨진 것. 미국 화폐에 아시아계 인물이 도안된 첫 사례다. 앞서 2년 전 미 연방의회는 성차별을 금지한 수정헌법 19조 발효 100주년을 기념, 올해부터 2025년까지 매년 5명씩 미국 역사상 중요한 여성들을 새긴 쿼터를 유통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 미국 동전 6종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이는 쿼터에 올해 웡과 함께 자리한 여성들은 흑인 시인이자 인권운동가 마야 앤절로, 미 최초 여성 우주인 샐리 라이드, 체로키 부족 첫 여성 족장 윌마 맨킬러, 여성 참정권 운동가 아델리나 오테로 워런이다. 1달러 동전엔 이보다 먼저 여성이 등장했다. 1979~1981년 발행분엔 여성운동가 수전 앤서니가 새겨졌고, 2000년부터는 미국 서부 개척을 도운 인디언 원주민 새커거위아를 넣은 동전이 주조되고 있다.

□ 미국 지폐에 여성이 입성할 날도 머지않았다. 올해 초 미 재무부는 20달러 지폐 앞면에 있는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초상을 뒷면으로 돌리고 대신 흑인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1822~1913)으로 변경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자신도 농장 노예였다가 탈출한 터브먼은 남부 노예 300여 명의 탈출을 돕고 남북전쟁 땐 흑인 부대를 지휘해 노예 해방에 앞장서 '흑인들의 모세'라고 불렸다. 달러 지폐를 처음 장식할 흑인으로 손색없는 여걸이라 하겠다.

이훈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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