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 7집 발표한 '데뷔 25주년' 인디 밴드 허클베리핀
"우리는 '록' 밴드가 아니라 그냥 밴드입니다."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할 수 있는) 힙합이 참 부러워요." "이 시대의 사운드 혁명은 팝에 들어가 있더군요."
1997년 데뷔해 25년째 활동 중인 국내 1세대 인디 록 밴드 허클베리핀은 최근 뜻밖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록은 죽었다' 같은 냉소주의적 선언은 아니다. 서울 서대문구 안산 인근 작업실에서 만난 허클베리핀의 이기용은 지난달 발표한 정규 7집 '더 라이트 오브 레인(The Light of Rain)'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드럼, 베이스, 기타로만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며 "요즘 팝과 힙합의 사운드 혁명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반영된 게 새 앨범"이라고 설명했다.
빌리 아일리시와 드레이크를 언급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기타를 버리고 힙합 복장으로 갈아입은 건 아니다.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허클베리핀 특유의 색채를 간직하면서도 팝적인 화법을 곳곳에 받아들였다. 방탄소년단을 'BTS'로 쓰듯, 허클베리핀도 이젠 'HBF'로 쓴다. 2집부터 허클베리핀의 목소리를 맡고 있는 이소영의 창법도 바뀌었다. 야생적으로 내지르던 창법은 거의 들을 수 없다. 그는 "20년 넘게 록 보컬 창법으로 노래해 왔는데 힘을 빼고 노래하는 게 무척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극단적으로 힘이 빠진 보컬"이라는 앨범 마지막 곡 '잠이 깨기 전'이 대표적이다. 새 앨범이 무대에서 얼마나 다르게 들리는지는 내달 12일 서울 마포구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리는 '옐로우 콘서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0년대 이후 허클베리핀의 음악은 요동쳤다. 5집 '까만 타이거'(2011)는 평소 색채와 사뭇 다른 댄스 록을 끌어안고 통통 튀어 올랐고, 이후 7년 만에 발표했던 6집 '오로라 피플'은 비트보다 공간감을 강조하며 공중을 부유했다. 섹시한 매력을 찾고자 했던 5집, 정신적으로 아프고 힘들어 음악을 할 수 없던 때 제주에서 머물며 마음을 치유한 뒤 만들었던 6집은 지킬과 하이드처럼 밴드의 양면성을 드러냈다.
7집은 5집과 6집의 절충안이자 고통스러운 내면과 떠들썩한 외부가 화해하는 앨범이다. 한동안 이기용, 이소영의 듀오 구성으로 활동하다 지난 앨범부터 전천후 연주자(드럼, 건반, 기타, 베이스 등)인 성장규가 합류하면서 안정감을 찾은 결과이기도 하다. 100m를 전력 질주하던 주자는 이제 힘을 빼고 걸으며 여유를 보인다. 애써 밝은 척하지도 않고, 어둠 속으로 숨으려 하지도 않는다. 기타는 보컬만큼이나 힘을 빼고 가볍게 찰랑이며 드럼도 살포시 통통거린다. "예전엔 제게 메시지가 중요했어요. 이솝우화에 빗대면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려는 바람이었죠. 이젠 햇살을 이용하게 됐어요. 팝의 장점인 멜로디에 집중하게 된 거죠."(이기용)
허클베리핀의 작업실은 땅굴을 파고 들어가듯 지하 3층에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지하 3층 바깥은 차양이 필요할 만큼 직사광선이 내리쬔다. 경사면에 지어진 건물의 묘미로 왠지 허클베리핀의 음악과 닮았다. 어둠으로 침잠하다 만나는 빛. 톰 소여와 함께 폭풍 속을 뚫고 나와 스물다섯이 된 청년 허클베리핀은 거울 속 자신의 그늘을 노려보다 이제 옆에 있는 이에게 고개를 돌린다.
"지금 가장 큰 고민은 사람과 사랑에 대해 얼마나 긍정하고 믿으며 마음을 열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혼자 제주에서 시간을 보냈고 서울에 돌아와선 팬데믹을 보냈어요.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니 오히려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어요. 빛, 사람, 위로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죠. '내가 네 옆에 계속 있을게'라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아요."(이기용)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