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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위기 전야 ‘1996년 대 2022년’

입력
2022.10.17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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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철
장인철수석논설위원

현 위기, 외환위기 전년 96년과 유사
외채·부채·공급망 위기 등 내용은 달라
파국 없어도 더 길고 심한 고통 가능성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최근 G20재무장관회의 및 IMF·WB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한국의 견조한 펀더멘털과 높은 대외 신인도를 감안할 때, 과거와 같은 위기 가능성은 없다"는 평가를 밝혔다. 뉴스1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최근 G20재무장관회의 및 IMF·WB 연차총회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한국의 견조한 펀더멘털과 높은 대외 신인도를 감안할 때, 과거와 같은 위기 가능성은 없다"는 평가를 밝혔다. 뉴스1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요즘 나도는 ‘제2 외환위기설’을 단호히 일축한다. 지난 9월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하면서 가동된 정부의 시장 개입 등으로 외환보유액이 한 달에 197억 달러 급감한 사실이 알려지자 외환위기 가능성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그는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4,168억 달러인 걸 감안하면 줄어든 비율은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되게 작다”며 “단적으로 말해 (외환위기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추 부총리의 말은 맞다. 1997년 11월 21일처럼, 우리 경제부총리가 TV 카메라 앞에서 국제통화기금(IMF)에 백기투항하는 그런 일은 다시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 경제에 닥친 상황이 가볍다는 얘긴 결코 아니다. ‘항복 조인식’ 같은 치욕은 없겠지만 지금은 분명히 심각한 위기이며, 심지어 과거 ‘IMF 시기’에 버금가는 고통을 수반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보인다.

위기를 직시하기 위해, 외환위기 전야로 볼 만한 96년 상황을 비교해 보자. 우선 지금 위기가 미국의 급격한 긴축 전환 때문에 빚어지고 있는 점은 당시와 같다. 97년 외환위기는 94년 미국의 급격한 금리인상이 시발점이었다. 당시 미 연준(Fed)은 연초 3%였던 현지 기준금리를 1년 만에 쉬지 않고 6%까지 올려버렸다. 그 여파로 그해 말 멕시코 페소화 위기가 발생했고, 그게 96년부터 시작된 태국 등 동남아 위기를 거쳐 우리나라에 감염된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미국의 긴축, 그에 따른 글로벌 자본의 수축, 그에 수반되는 글로벌 경기둔화는 일종의 경기순환과 비슷하다. 따라서 이번 위기에도 전반적 불황은 감당해낼 수밖에 없는 파고나 마찬가지다. 다만 그때와 지금의 우리 경제 상황은, 비록 지표 흐름은 비슷해도, 내용은 적잖이 다르다.

우선 경상수지 적자를 보면, 당시 경상 적자는 일부 상품수지 영향에도 불구하고 주로 대기업 설비투자 폭증과 금융사 차입에 따른 해외 부채 폭증이 문제였다. 반면, 지금은 국제 원자잿값 급등과 공급망 위기 등 시장의 근본적 변화가 작용하고 있는 게 다르다. 그래서 당시엔 해외 부채가 외환위기를 불렀지만, 지금은 시장의 근본적 변화로 인한 불황 장기화 가능성이 더 큰 문제인 셈이다.

지금도 부채 문제는 있다. 하지만 그땐 한보나 기아처럼 대기업군의 부채와 연쇄 부도가 나라 경제를 뒤흔들며 위기를 불렀다. 반면, 지금은 막대한 부채가 수백만 가계와 소상공인들로 분산돼 당장 거시경제 위기까지는 안 갈 것이다. 그래도 수많은 가계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는 건 분명하다.

최근 환율 급등을 당시와 비교하지만 다소 오해가 있다. 당시 환율은 IMF 구제금융 신청 후에 본격 급등했다. 그 전엔 정부의 원고 정책에 따라 96년은 물론, 외환위기가 한창 진행 중이던 97년 9월까지도 적정 환율보다 무려 176원이나 낮은 929원을 유지했을 정도였다. 반면 지금 정부는 기본적으로 환율 상승을 용인하며 충격을 점차 흡수해내고 있다. 그게 대규모 원화 투기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

이상 비교를 통해 이번 위기의 내용을 짚어보면 우선 극적인 파국은 없다는 게 맞다. 하지만 시장 격변과 글로벌 불황으로 그늘은 훨씬 길고 구조화할 가능성이 크다. 그때보다 실업 고통은 덜하겠지만, 부채를 축으로 국민 다수가 겪을 고통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중추 생산기반의 한국 이탈로 국내 성장기반과 일자리 위축도 구조화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요컨대 당시 외환위기가 호된 얼차려였다면, 이번엔 고질화하며 자칫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따라갈 우려가 큰 위기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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