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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사이드' 세계 최초 집계한 스페인 "구분해야 죽음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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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사이드' 세계 최초 집계한 스페인 "구분해야 죽음 막을 수 있다"

입력
2022.10.18 11: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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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공식 집계 주도한 평등부 인터뷰]


지난 1일(현지시간) 에콰도르 수도 키토의 경찰당국 건물 앞에서 시민들이 페미사이드 희생자를 추모하고 관련 입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키토=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일(현지시간) 에콰도르 수도 키토의 경찰당국 건물 앞에서 시민들이 페미사이드 희생자를 추모하고 관련 입법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키토=로이터·연합뉴스

'페미사이드(Femicide)'. 여성(Female)과 살해(Homicide)를 합한 말이다.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성차별, 성착취, 혐오 등이 범행 동기가 되어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하는 살해'를 가리킨다.

특정 여성의 죽음을 페미사이드로 규정하고 페미사이드를 구조적으로 막지 못한 책임을 묻는 일이 늘고 있다. 이달 14일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1일 에콰도르에선 페미사이드 희생자 추모 시위가 열렸다. 지난달 서울지하철 신당역 살인 사건 때는 '스토킹→살인'으로 전개된 범죄를 페미사이드로 볼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붙었다.

"페미사이드는 구조적 범죄다. 별도로 관리∙감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페미사이드를 무 자르듯 구분할 수 있느냐", "여성에 대한 범죄만 특별 대우를 하는 것은 과하다" 등의 논리다.

스페인은 치열한 사회적 토론을 거쳐 지난달부터 '페미사이드 공식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초로 페미사이드를 정의한 국가"가 된 데 대한 국민들의 자부심이 크다. 여성 혐오 범죄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이를 막아야 한다는 시위가 전국에서 대규모로 일어난 이후 성평등을 핵심 과제로 상정한 진보정권이 2018년 들어서면서 정책이 탄력을 받았다.

통계 작업을 주도한 건 한국의 여성가족부 격인 평등부다. '예스 민스 예스'(Yes means yes∙적극적 동의가 없는 성관계는 성폭력으로 간주하는 것) 입법을 관철시킨 이레네 몬테로 평등부 장관의 보좌진이 평등부의 입장을 한국일보에 전해 왔다.

페미사이드 통계 작업을 주도한 이레네 몬테로 스페인 평등부 장관. 그는 "이름 붙이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젠더 기반 범죄를 별도로 규정하고 분류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 필요성도 간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 평등부 캡처

페미사이드 통계 작업을 주도한 이레네 몬테로 스페인 평등부 장관. 그는 "이름 붙이지 않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젠더 기반 범죄를 별도로 규정하고 분류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 필요성도 간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 평등부 캡처

-페미사이드를 어떻게 정의하나.

"'위계, 차별, 혐오에 의해 발생한 여성 살해인가'를 따지는 게 핵심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원래 아는 사이였는지를 비롯한 관계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페미사이드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 관련 입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이다.

"물론 쉽지 않다. 스페인은 2018년 페미사이드 통계 발표를 약속했는데, 첫 결과물이 나오는 데 4년이나 걸렸다. 올해 스페인에서 발생한 페미사이드 사건은 34건으로 공식 집계됐다. 그동안 각계 전문가들과 수많은 협의를 했다. 특정 사건이 페미사이드인지를 판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범행 의도와 동기를 파악하는 데 많은 노력이 든다. 분명한 것은 어렵지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첫 집계 결과가 34건인 것은 스페인 정부가 페미사이드 분류에 신중을 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의 우려처럼 '여자가 살해당한 사건=페미사이드'라고 손쉽게 결론 내지는 않는다.

-정부 차원에서 페미사이드를 유형별로 나눴다고 들었다.

"①'연인 페미사이드'는 남편, 연인 또는 전남편, 전 애인에 의한 살해다. ②'가족 페미사이드'는 가족 내 살해다. 이슬람권 등에서 '가족 명예를 더럽혔다'며 저지르는 '명예 살인'도 포함된다. ③'섹스 페미사이드'는 성폭력과 결부된 살해다. 성매매 종사자가 희생당하는 경우도 포함된다. ④'사회적 페미사이드'는 이웃, 친구, 동료 등이 가해자인 경우다."

스페인 정부가 집계한 올해 페미사이드 중 상당수는 가해자가 아는 사람인 사건이었다. 평등부는 "어느 날 갑자기 살해된 게 아니라 젠더 폭력 속에서 살다 살해됐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정부가 페미사이드를 구분하고 통계를 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이 없는 존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철저히 구분하고 인지하지 않으면, 감시망 바깥에서 활개칠 수 있단 뜻이다. '구분을 위한 구분'이나 '통계를 위한 통계'가 아니다. 어떤 범죄가, 얼마나 발생하는지를 파악하고, 이를 막기 위한 정책을 개발하는 게 궁극적 목표다."

평등부는 올해 6월까지 집계된 페미사이드 희생자 19명 중 11명이 60세 이상이라는 점을 발견하고 놀랐다. '페미사이드'라는 용어가 주로 젊은 세대에서 사용됐기 대문이다. 이에 여성 노인을 간과했다는 점을 반성하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별도 정책을 개발하기로 했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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