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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 고르는 데 수십억짜리 첨단 기계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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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 고르는 데 수십억짜리 첨단 기계가 등장했다

입력
2022.10.21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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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서 첫 4세대 선별기 도입한 도봉자원순환센터
광학 선별기로 폐플라스틱 분자구조까지 파악
"제대로 분리수거돼야 재활용률도 높아져"

김현수 ACI 대표가 지난달 28일 서울 도봉구 자원순환센터에 설치된 광학 자동선별기의 폐플라스틱 분류 항목을 설정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김현수 ACI 대표가 지난달 28일 서울 도봉구 자원순환센터에 설치된 광학 자동선별기의 폐플라스틱 분류 항목을 설정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재활용품 수거 차량이 내려놓은 물건들이 컨베이어 벨트에 얹혀 여러 작업대를 지나 끝에 놓인 커다란 기계를 거치니 페트(PET)병과 비닐 등 플라스틱이 종류별로 헤쳐 모였다. 얼핏 봐선 쓰레기 더미 같던 재활용품들이 원래 모습을 찾더니 1.1㎥의 정육면체 형태로 압축됐다.

전국에서 처음으로 4세대 광학 선별기와 로봇 선별기를 도입한 서울 도봉구의 자원순환센터를 위탁 운영하는 김현수 ACI 대표는 20일 "쓰레기로 보이던 물건들이 광학 선별기까지 거치고 나면 재활용할 수 있는 폐플라스틱 뭉치로 탈바꿈한다"며 "비로소 재활용이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재활용 공정의 마지막인 광학 자동선별기는 ①근적외선 가시광선으로 분자 구조를 파악하고 ②플라스틱 재질과 색상까지 동시에 인식해서 종류별로 갈라놓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③인공지능(AI)의 학습을 통해 선별 속도나 정확도를 높이는 등 첨단 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에 그 가격은 수십억 원에 이른다.

폐플라스틱을 선별하는 데 이렇게 큰돈을 들인 건, 그나마 이 과정에서 최대한 깨끗하게 처리해야 재활용 최종 결과물의 품질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큰돈을 들일수록 재활용률이 높아지는 셈이다.

도봉구는 56억 원을 들여 재활용품의 수거·분류·압축 등 공정을 체계적으로 만들고, 첨단 기기를 도입하는 등 현대화 작업을 거쳐 1월부터 자원순환센터를 가동하고 있다. 현재 재활용품 선별률이 80% 이상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자원순환센터 중 가장 높다. 이 센터에서 처리하는 폐플라스틱 양은 하루 평균 40톤 정도다.



인력과 첨단 기기 투입해 재활용품 선별해

주민들이 분리·배출한 재활용품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도봉구 자원순환센터 선별장에서 선별 과정을 거치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이동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주민들이 분리·배출한 재활용품들이 지난달 28일 서울 도봉구 자원순환센터 선별장에서 선별 과정을 거치기 위해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이동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하지만 광학 선별기가 재활용품을 골라내기 전에 수많은 작업들이 필요하다. 재활용품 선별은 ①파봉정량공급기 ②대형 폐기물 수(手)선별 ③비중 발리스틱 선별기 ④고(高)비중 수선별 ⑤광학 자동선별기 ⑥압축을 거친다. 파봉정량공급기가 주민들이 분리·배출한 재활용품이 담긴 비닐이나 마대 자루를 뜯어 내용물을 쏟아내면 컨베이어 벨트에 얹어 대형 폐기물 선별 작업대로 옮긴다.

작업대 주변에 서 있는 16명이 다리미나 전기담요, 프라이팬 등 플라스틱이 아닌 물건들을 손으로 골라낸다. 분리·배출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들이다. 사람이 직접 작업하는 공간이라 바깥 공기를 공급하지만 시큼한 냄새는 어쩔 수 없다.

선별 작업대를 빠져나간 것들은 바람과 진동을 이용한 비중 발리스틱 선별기를 거치면서 △유리, 자기, 신발, 가스캔 △PET나 우유통 같은 플라스틱 병류 △종이, 비닐, 원단 △음식폐기물, 흙, 깨진 유리 △먼지 등으로 나뉜다.

이것들은 다시 사람의 손을 거쳐 각종 유리병과 가스가 남아 있는 부탄가스통 등을 제거한 뒤에야 광학 자동선별기로 옮겨진다.

현재 수준에 만족하지 않고 선별률을 높이기 위해 광학 선별기 기술을 꾸준히 개량하고 있는 김 대표는 분리ㆍ수거된 재활용품에 대한 아쉬움도 털어놓았다. 처음부터 분리수거가 깨끗이 잘 된 재활용품이 들어오면 선별률도 크게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센터 내부 선별장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퀴퀴한 냄새가 기자의 마스크를 뚫고 코끝을 찔렀다.

이 센터에 모이는 재활용품들은 아파트 단지에서 보던 깨끗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김 대표는 "이곳에는 상대적으로 분리수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주택가나 상가 지역, 오피스텔 등에서 수거한 물건들이 들어온다"며 "(악취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대형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들이 깨끗이 씻고 택배 반송장이나 테이프를 잘 떼어내 분리한 재활용품들은 따로 계약을 맺은 다른 업체로 넘겨진다고 했다. 깨끗한 재활용품이 들어오면 선별률도 높아지고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의 순도도 높아지는 것이다.



플라스틱 생산부터 재활용까지 시스템 구축해야

김현수(오른쪽) ACI 대표가 지난달 28일 서울 도봉구 자원순환센터에서 선별 과정을 거쳐 소재별로 압축한 폐플라스틱 더미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김현수(오른쪽) ACI 대표가 지난달 28일 서울 도봉구 자원순환센터에서 선별 과정을 거쳐 소재별로 압축한 폐플라스틱 더미 앞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김 대표는 "아직도 놓치는 것이 많다"며 재활용품 선별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선 생산 단계에서부터 재활용 단계에 이르기까지 체계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플라스틱 제품의 생산량, 수거되는 폐플라스틱의 양, 선별 과정을 거쳐 재활용되는 양 등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가 만들어져야 한다"며 "이를 바탕으로 각 단계별로 필요한 자원을 투입해야 재활용의 효율도 높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플라스틱 제품을 만들고, 쓰고, 모아서 재활용하는 대기업과 소비자, 그리고 중소기업들 모두 힘을 모아야 폐플라스틱의 순환 경제가 제대로 자리 잡을 것이란 얘기다.

안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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