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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했지만 소외된 이들을 위해 변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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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했지만 소외된 이들을 위해 변론합니다"

입력
2022.10.20 04:30
수정
2022.10.20 07:12
23면
0 0

정혜진 국선전담 변호사 인터뷰
드라마 '변론을 시작…' 원저자
'장발장법' 위헌 결정 이끌어내
지탄 받는 이들 사각지대 방치
"우후죽순 처벌 강화 능사 아냐"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국선 변호사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다. '돈이 안 되는' 의뢰인 사정을 귀찮은 듯 흘려듣기 일쑤고, '의무 방어전' 치루듯 불성실하게 변론하는 모습이 자주 그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2일 수원고법 인근 카페에서 만난 정혜진 수원고법 국선 전담 변호사는 달랐다. 정 변호사는 "국선 변호를 받는 분들 중 상당수는 경제적으로 어렵고 삶이 위태롭다"며 소외된 이들이 처한 상황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에세이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이름이 법이 될 때'의 저자인 정 변호사는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의 원저자다. 그는 이른바 '장발장법' 위헌 결정을 이끌어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자신을 생활형 변호사라고 소개한 정 변호사를 만나 국선 변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드라마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의 원저자 정혜진 변호사가 12일 수원고법 인근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국선 변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재연 기자

드라마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의 원저자 정혜진 변호사가 12일 수원고법 인근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국선 변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재연 기자

드라마 속 대형로펌 엘리트 변호사였던 노착희(정려원 분)가 국선 변호사로서 만난 의뢰인들은 모두 정 변호사가 국선 활동을 하면서 대면했던 사람들이다.

기질성 뇌장애로 먹던 빵을 뺏었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때려 숨지게 한 40대 남성, 부친의 가정폭력을 피해 가출했다가 자신이 낳은 아이를 두 번이나 버리고 도망가게 된 20대 여성, 갑자기 얻은 조현병으로 병원에서 자신의 다리에 칩을 심었다고 믿게 된 30대 여성까지. 이들은 사회적으로 지탄받고 외면받았지만 모두 정 변호사를 거쳐갔다. "범죄자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하지만, 제도적으로 그들을 위해 보완해야 할 문제가 많아요." 그가 책과 드라마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이유다.

드라마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원저자 정혜진 변호사가 12일 수원고법 인근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국선 변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재연 기자

드라마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원저자 정혜진 변호사가 12일 수원고법 인근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만나 국선 변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문재연 기자

드라마 속 노착희가 대형로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면, 정 변호사는 15년간의 기자생활을 접고 국선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스스로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는 사람들을 대리하다 보니 정 변호사가 만나는 피고인들은 대부분 생활형 범죄자이거나 열악한 환경에서 범죄에 노출된 경우가 많다.

이들은 누구에게도 관심을 못 받는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정 변호사가 가출 여성이 버린 아이의 출생신고를 대신한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장에서 지은 이름은 '희망'이었다. "자식이 암에 걸렸다고 하면 시람들에게 동정을 받지만, 조현병에 걸렸다고 하면 혐오의 시선을 보냅니다. 치료감호제도가 있지만 전공의도 부족하고 제대로 된 인프라도 갖추지 못했어요. 처벌에만 집중하는 게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봐요."

정 변호사가 새내기 시절 '장발장법' 위헌 결정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소외계층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 절도 전과가 있으면 빵 하나만 훔쳐도 3년 이상 중형에 처하도록 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조항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컸지만,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를 따지겠다고 결심한 변호사는 없었다.

그렇다면 재범과 범죄 대물림을 막기 위해선 어떤 정책적 보완이 필요할까. 정 변호사는 중벌주의와 교화주의의 균형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국회는 형벌을 높이는 법안을 우후죽순으로 내놓아요. 그런데 사실 법을 바꾸지 않아도 현행법만으로도 중범죄자는 강하게 처벌할 수 있어요. 하지만 형량의 하한을 올리면, 상대적으로 경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가혹한 처벌이 내려집니다. 이게 과연 공정한 것일까요." 그가 세상과 사람에 대해 애정을 갖고 변론을 하는 이유다.

정혜진 변호사가 6년간의 국선변호 경험을 담은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드라마 방영에 맞춰 재출간됐다. 문재연 기자

정혜진 변호사가 6년간의 국선변호 경험을 담은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드라마 방영에 맞춰 재출간됐다. 문재연 기자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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