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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스타트업의 황당한 마약 국감

입력
2022.10.15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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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진
최연진IT전문기자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 국감에서 자료 화면을 보고 있다. 오대근 기자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5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 국감에서 자료 화면을 보고 있다. 오대근 기자

국회의 국정감사 때마다 코미디 같은 일이 종종 일어난다. 이번 국감 때 일어난 어느 신생기업(스타트업) 대표의 황당한 증인 채택 일화도 실소를 자아낸다.

전자상거래 분야의 모 스타트업 대표는 한 의원으로부터 보건복지부 국감과 관련해 증인으로 채택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민망한 이야기이니 해당 의원의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겠다.

증인 채택 이유는 이 업체가 올해 판매한 인기 상품 가운데 '마약 베개'와 '마약 이불' 때문이었다. 물론 마약 성분이 들어간 베개와 이불이라는 뜻이 아니라 한번 사용해 보면 너무 좋아서 계속 사용하게 될 만큼 중독성이 강한 제품이라는 뜻의 마케팅을 위한 과장 표현이다.

관련 자료를 제출하려고 해당 의원실을 두 차례나 방문한 모 스타트업 대표와 부대표는 왜 마약을 이용해 마케팅을 하냐며 호된 질책을 들었다. 국감이 시작되기 이전에 마약 베개와 마약 이불 대신 '딥슬립 베개'와 '딥슬립 이불'로 바꿔서 알리고 있다는 설명을 하고 나서야 겨우 증인 채택이 취소됐다.

굳이 범죄 수단까지 이용해 마케팅을 할 필요가 있냐는 의원실의 지적도 일리 있지만 과연 마약 표현 때문에 베개와 이불을 구입하면서 마약에 빠지거나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오히려 의원실의 우려보다 정치권의 우민하고 경직된 사고만 드러낸 것 같아 씁쓸하고 안타깝다. 국민을 대신해 국감을 하는 만큼 철저하게 준비된 모습을 보여주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텐데 스타트업의 마케팅 표현까지 들여다보고 시시비비를 따질 만큼 한가한지도 의문이다.

이렇게 마케팅 표현까지 일일이 시비를 걸기 시작하면 문제 삼을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마약 김밥'이나 '마약 떡볶이'처럼 아예 상호에 마약을 붙인 경우도 있고 '마약 옥수수'와 '마약 핫도그' 등 맛을 과장되게 표현하기 위해 마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경우도 있다. 모 의원실의 잣대로 보면 이런 업체 대표와 소상공인들도 줄줄이 국감의 소환 대상이다.

아닌 게 아니라 얼마 전 또 다른 의원이 마약 등 유해 물질을 식품 명칭이나 광고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식품 등 표시, 광고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근 마약 범죄가 늘어나는 만큼 사람들에게 마약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심어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러면서 정작 정치권에서는 게임 산업을 마약에 빗대는 등 산업에 미칠 파장을 고려하지 않고 마약이라는 용어를 함부로 사용한다.

범죄와 풍자, 마케팅은 엄연히 다르다. 사람마다 생각과 이해도가 다르니 하류 문화를 이용한 B급 감성과 풍자, 마케팅 방법을 이해 못 할 수 있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왜곡하거나 침소봉대해서는 안 된다.

최근 정치권과 정부가 보여주는 행태는 B급 감성과 풍자, 마케팅마저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 옥죄는 정치 놀음에 가깝다. 청소년이 그린 풍자만화 '윤석열차'를 둘러싼 문화체육관광부의 졸렬한 처사나 배우 허성태가 코미디 프로에 나와 춘 춤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은 각종 인터넷 게시판에서 사람들의 조롱을 받고 있다. 1970년대로 회귀하는 정치권의 레트로(복고) 감성이라느니, 대중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재해석하는 정치권의 '신박한'(새롭고 놀랍다는 표현) 상상력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마케팅과 풍자는 그 자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색안경을 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보면 된다. 굳이 흔들 필요가 없다.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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