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지 않으면 정의 관념에 반해"
유신 정권 시절 긴급조치 1호 첫 위반자로 옥고를 치른 고(故) 장준하 선생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서도 승소했다.
서울고법 민사21부(부장 홍승면)는 13일 장 선생의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가 유족에게 7억8,000여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1심 판결을 유지했다.
장 선생은 1973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 유신헌법에 반대해 재야 인사와 종교계 인사, 지식인, 학생들을 모아 '개헌 청원 100만 인 서명운동' 등을 벌였다. 이듬해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기소된 그는 법원에서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받았다. 공소 제기부터 형 확정까지 6개월밖에 걸리지 않았다. 장 선생은 형 집행 중이던 1974년 12월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이듬해 산에서 숨진 채 발견돼 타살 의혹이 제기됐다. 장 선생은 장남 장호권씨의 재심 청구를 통해 사망 39년 만인 2013년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유족들은 이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대법원은 박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발동에 대해 '고도의 정치행위'라는 이유로 손해 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장 선생 유족들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민사20부(당시 부장 김형석)는 대법 판례를 따르지 않고 "긴급조치는 발령 자체가 위법"이라며 국가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이 당초부터 위헌·무효인 긴급조치를 고의 및 과실로 발령하고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을 아무도 지지 않으면 정의 관념에 반한다"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행위는 그 위반 행위에 대한 수사, 재판, 형의 집행을 당연히 예정하고 있고 실제로 피해가 구체적으로 발생한 경우 수사, 재판, 형의 집행과 분리해 발령행위 자체만을 판단해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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