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동물해부실습 예외 적용
학교에서 위원회 심의 거치면 허용
법의 보호받지 못하는 무척추동물
얼마나 동원되는지 실태 파악조차 안 돼
지방의 한 국립대 해양과학교육원은 지난달부터 초중고교생을 중심으로 진행하던 해양동물 해부실습 프로그램 내용을 바꿨다. 그동안 살아 있는 넙치와 오징어를 부위별로 자르고 관찰하는 체험을 진행해왔는데 이론 중심으로 바꾸고, 해부실습 대상 역시 오징어로 제한했다. 이는 해당 내용이 문제라고 인식한 참가자에게서 연락을 받은 동물권행동 카라가 교육원 측에 미성년자 동물 해부실습 중지와 생명존중 교육으로 전환을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카라가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당 교육원이 2017년부터 5년간 해부실습에 사용한 넙치와 오징어는 4,000여 마리가 넘는다. 교육원 측은 "동물단체 지적 이후 윤리교육 등 이론 중심으로 프로그램 내용을 바꿨다"며 "다만 이미 예약을 한 학생에 한해 동물보호법대상이 아닌 무척추동물인 오징어 사체 해부는 진행하고 있다. 점차 줄여나가겠다"고 했다.
미성년자 동물해부실습 원칙적 금지라는데...
정부는 2018년 3월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는 동물해부실습이 미성년자에게 정신적 충격을 주고, 생명존중에도 반한다는 것을 근거로 동물해부실습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해당 법은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0년 3월부터 적용되고 있다.
그럼에도 학교에서는 여전히 동물해부실습이 이뤄지고 있다. 동물보호법 제24조 2항에 따르면 미성년자에게 사체를 포함한 동물 해부실습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지만 학교 또는 동물실험시행기관이 시행하는 경우 등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경우를 예외로 두고 있어서다.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23조 2항에 따르면 학교 또는 동물실험시행기관이 동물실험윤리위원회나 해부실습을 위해 만든 동물해부실습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면 동물 해부실습이 가능하다.
조현정 카라 활동가는 "심의위원회는 과학 관련 교원, 학부모, 수의사나 약사 등으로 구성할 수 있도록 해 만들기 어렵지 않다"며 "원칙적 금지라는 말이 무색하게 (해부실습을) 대폭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지적했다.
무척추동물은 해부실습 실태 파악 조차 안 돼
더 큰 문제는 교육원 측이 주장한 대로 오징어 등 무척추동물은 동물보호법 대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동물보호법 제2조에 따르면 '동물'이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신경체계가 발달한 척추동물로 포유류, 조류, 파충류∙양서류∙어류로 정의되어 있다. 실험동물에 관한 법률 제2조에서도 실험동물은 '동물실험을 목적으로 사용 또는 사육되는 척추동물을 말한다'라고 되어 있어 오징어 등 무척추동물은 수많은 해부실습에 동원되고 있음에도 그 실태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동물단체들은 무척추동물 역시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한다. 실제 해외에서는 무척추동물을 고통을 느끼는 존재로 인정하고 동물보호법 대상에 포함하는 추세다. 카라에 따르면 캐나다의 경우 보호받아야 할 동물에 두족류(문어, 오징어 등)를, 뉴질랜드와 스위스, 노르웨이에서는 문어, 오징어를 비롯해 갑각류를 포함하고 있다. 영국도 올해 3월 문어와 게를 '지각 있는 존재'로 인정하는 내용의 동물복지법 개정안을 의결, 내년부터 동물보호 대상에 포함했다.
조현정 활동가는 "모든 무척추동물 역시 고통을 느끼고, 그 고통은 동물에 큰 스트레스와 위해가 된다"며 "현행 동물보호법상 미성년자에게 정신적 충격을 준다는 이유로 동물해부실습을 금지하고 있는데, 두족류는 허용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 법의 취지와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내에서도 농림축산검역본부가 만든 개구리 해부실습 증강현실(AR) 콘텐츠가 공개되어 있는 등 영상과 해부 모형을 활용한 교육이 충분히 가능하다"며 "미성년자 해부실습을 전면 금지하고 대체수업 도구와 교안을 적극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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