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이슬아'의 작가 이슬아 첫 장편
'가녀장의 시대'… 자신의 삶 녹여내
실패를 답습한 가녀장에 깊어진 고민
가부장제는 문학의 단골 소재다. 스치고 지나치는 일상 속에서 가부장제의 부조리와 불합리를 포착해 내 큰 공감을 얻은 작품이 적지 않다. 제사 풍경을 스릴러 문법으로 풀어 문단의 호평을 받은 강화길의 단편 '음복'이 있었고, 출산 이후 여성의 삶을 잔잔하게 따라간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국경도 넘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SF작가 정보라의 '여자들의 왕'은 모계 왕권의 판타지를 흥미롭게 그려냈다.
'일간 이슬아'로 유명한 작가 이슬아(30)의 첫 장편소설 '가녀장 시대'는 그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가녀장'이란 용어는 이미 '일간 이슬아'(작가가 쓴 글을 하루 한 편 메일로 보내는 프로젝트) 연재 당시부터 화제가 됐다. 아버지가 아닌 딸이 가장이 된 집안은 어떤 모습일까. 이 소설은 작가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한 픽션이라 '현실 밀착형' 사건들이 매일 터지는 시트콤처럼 읽힌다. (이슬아는 '작가의 말'에서 남의 가족 이야기인 드라마를 보며 울고 웃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TV에서 보고 싶은 이야기를 썼다고 전했다.)
주인공 '슬아'는 작가다. 1인 출판사인 '낮잠'을 운영하는 사장이기도 하다. 상인 할아버지가 통치하는 집에서 나고 자랐지만 서른이 된 지금은 집안의 경제권을 잡은 가장이 됐다. 자신의 출판사 사무실 겸 집에 '모부(母父)'와 함께 살면서 그들을 직원으로 채용했다. 시아버지 아래서 11인분의 가사노동을 하던 '복희'(모)는 이제 출판사 서류 작업과 부엌일 등을 맡았다. 트럭운전부터 수영강사까지 다사다난한 노동의 역사를 품고 있는 '웅이'(부)는 청소와 운전 등을 한다.
소설의 첫 재미는 기존 권력이 전복된 삶을 엿보는 데서 온다. 집 구조부터 달라진 위계질서를 보여준다. 모부의 방은 지하에 위치하고 주인공의 서재와 침실은 맨 위층에 있다. 사장이자 가장인 '슬아'는 집안 어디에서나 실내 흡연을 하지만, 아빠인 '웅이'는 집밖에서 담배를 피워야 한다. 그런가 하면 살림 노동의 가치는 올라간다. 며느리로 살 때는 무급 노동을 했던 '복희'는 같은 일을 하지만 이제는 '웅이' 월급의 두 배를 받는다. '가녀장제'에서는 살림 노동의 가치가 인정받는다는 얘기다.
작가는 단순히 '타도 가부장제'를 외치고 나아가지 않는다. 주인공의 실패담을 통해 '그 후'를 고민해보게 한다. '슬아'는 어서 밥을 먹으라고 재촉하는 '복희'에게 "국 좀 식으면 어때서"라고 쏘아댄 후 자신의 실패를 직감한다. 돌아서면 밥상을 또 차려야 하는 일의 허무를 알지 못하고 그 가치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은 오만에서 흘러나온 한마디였다. 급여 유무를 제외하면 자신의 할아버지, 가부장과 다를 바 없는 가녀장의 모습인 셈이다. 욕실 보수 공사 수리업체를 고민하는 '웅이'에게 한 "제가 직접 하기엔 너무 사소한 고민이군요"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가진 자가 타인의 노동을 나의 노동보다 가볍게 여긴 순간이다. 결국 이런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가 작가의 질문일 것이다.
슬아네는 서로를 한 뼘 더 이해하며 각자의 균열을 딛고 앞으로 나간다. 주인공은 '복희'와 그의 엄마 '존자씨'를 "나의 수호신들"이라고 말하고, '웅이'에게는 "가족이라서 아빠랑 일하는 거 아니야. 아빠 같은 일꾼이 희귀한 거 알고 있어요"라며 존경을 표한다. 반대로 딸네 회사에서 청소하는 자신을 향한 고등학교 동창들의 이죽거림에 "내가 그냥 (딸에게) 맞춰주는 거야"라는 말을 내뱉은 '웅이'는 사실 지금이 가족의 호시절임을 인정하게 된다. "별다른 슬픔 없이 딸과 자신이 서로 도울 수" 있어서다. 그 과정에서 딸에게 갖는 존경의 마음도 스스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슬아의 전작을 읽은 독자는 몇몇 장면에서 기시감을 느낄 수도 있다. 픽션과 논픽션 중간에서 글을 쓴다고 밝혔던 작가가, 종종 써낸 자신과 모부에 대한 글 내용과 비슷한 부분들 때문이다. 그럼에도 동료 작가 김초엽의 추천사("'나'에게서 '그'의 세계로 진입하는, 작가 이슬아 제2막의 시작")처럼, 시선이 밖으로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그는 과거 서평집('너는 다시 태어나려고 기다리고 있어')에서 "전쟁을 겪지 않았다면 사회적인 관심이 없는 문학을 했을 거라고. 결코 현실 참여적이지 않았을 거라"고 했던 박완서 작가의 이야기를 하며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닮고 싶다"고 했다. 어쩌면 첫 소설이 그 노력의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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