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태생 독일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
내달 15·16일 베토벤 소나타로 첫 내한 독주회
사회 현안에 강한 목소리 "시민으로서 책임감"
"베토벤의 음악은 두려움을 모르는 음악이다."
러시아 태생의 독일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비트(35)는 최근 독일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노 피어(No Fear)'에서 이같이 말했다. 영화는 2019년 베토벤 소나타 전곡(32곡) 음반을 발매하며 자신만의 뚜렷한 음악적 색채를 펼쳐 보인 레비트가 "안전지대"(미국 CBS '60분' 인터뷰 중)로 여기는 베토벤 이후의 음악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베토벤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레비트가 바로 그 베토벤을 들고 한국을 찾는다. 그는 내달 15일 예술의전당, 16일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베토벤 소나타 17번 '템페스트'와 8번 '비창', 25번, 21번 '발트슈타인'을 연주한다. 2017년 키릴 페트렌코가 지휘하는 바이에른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의 협연자로 한국 데뷔 무대를 가졌지만 독주회로는 이번이 첫 내한 무대다. 그는 공연에 앞서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도 베토벤과의 연계를 강조했다.
"돌아보면 인생의 절반을 베토벤에 몰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베토벤은 예술가로서나 인간적으로 제 삶에 깊이 연결돼 있어요. 제게는 베토벤 음악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특별하게 다가옴과 동시에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음반으로 2020년 도이치 그라모폰의 올해의 아티스트상, 오푸스 클래식상을 받았던 레비트는 "이번 독주회 프로그램은 연주할 때 즐거움을 주는 곡들로 구성했다"며 "관객도 좋아할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이라고 덧붙였다.
레비트는 사회적 현안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는 연주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홈페이지에 '시민(Citizen), 유럽인(European), 피아니스트'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2017년에는 런던 BBC 프롬스 무대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Brexit·브렉시트)를 비판하며 'EU찬가'로 쓰이는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앙코르곡으로 연주해 주요 외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최근에는 독일 주의회 선거에서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약진한 데 대해 비판적 글을 트위터에 게시하기도 했다. 레비트는 민감한 정치적 문제에 침묵하지 않는 이유를 "책임감"으로 설명했다. 그는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속한 사회를 위해 책임감 있는 시민으로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8세 때 독일로 이주한 레비트에게 정치적 소신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것은 선택이 아닌 자신의 삶과 음악에서 추구해 온 생존 전략이다. 그는 이 같은 적극적 정치적 표현이 음악을 통한 소통에 방해가 된다고 보지 않는다. 레비트는 "무대 위에서 나는 음악만으로 나 자신을 표현한다"며 "관객 중 누군가는 내 음악과 사회적 의견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겠지만 또 누군가는 내 음악만 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레비트의 리사이틀은 2020년에 예정됐다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올해로 미뤄졌다. 그는 많은 공연이 중단된 코로나19 봉쇄 기간 중 자택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53차례 온라인 생중계 콘서트를 열어 사회적 고립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코로나19 전후로 스스로 큰 변화를 겪었다고 말했다. "모두에게 팬데믹은 교육적이었고 변혁적이었죠. 저는 이제 더 자유로워졌고 이전보다 자신감도 더 생긴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저를 해방시켰다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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