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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만드는 퇴비…팬데믹 이후의 회복과 공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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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만드는 퇴비…팬데믹 이후의 회복과 공생

입력
2022.10.13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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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들, 우리는 커진다' 대안공간 루프에서

권은비의 신작 '실패의 장소 안에 퇴비' 일부. 책상과 의자, 감자, 전동장치, 흑연, 종이, 부엽토, 낙엽, 아크릴, 와이어, 오디오 장치 등.

권은비의 신작 '실패의 장소 안에 퇴비' 일부. 책상과 의자, 감자, 전동장치, 흑연, 종이, 부엽토, 낙엽, 아크릴, 와이어, 오디오 장치 등.

서울 홍대입구 한복판에 자리 잡은 대안공간 루프의 지하에서는 현재 퇴비가 만들어지고 있다. 미술관 입구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좁은 문을 지나 계단을 내려가면 전시장이 나타나고 그 가운데 플라스틱 뚜껑이 달린 검은 바위가 앉아 있다. 바위 안에서 퇴비가 천천히 만들어진다. 부엽토가 썩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해 온 작가 권은비가 이달 23일까지 루프에서 열리는 ‘자매들, 우리는 커진다’에 내놓은 설치 작품 ‘실패의 장소 안에 퇴비’다.

관객은 바위 옆에 놓인 탁자에 앉아서 헤드폰을 머리에 쓰는 것으로 작품 관람이자 퇴비 만들기에 동참한다. 진동 소리에 집중하면서 작가가 미리 마련해 놓은 계약서를 읽으면 계약이 성립된다. 헤드폰으로 들려오는 지시에 따라서 바위를 돌린다. 계약의 마지막 순서는 QR코드를 이용해서 작가와 차후에 만나기로 약속하는 것이다. 함께 만든 퇴비를 건네받는 날이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대안공간 루프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김민호 기자

지난 7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대안공간 루프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김민호 기자


권은비의 신작 '실패의 장소 안에 퇴비' 일부. 책상과 의자, 감자, 전동장치, 흑연, 종이, 부엽토, 낙엽, 아크릴, 와이어, 오디오 장치 등.

권은비의 신작 '실패의 장소 안에 퇴비' 일부. 책상과 의자, 감자, 전동장치, 흑연, 종이, 부엽토, 낙엽, 아크릴, 와이어, 오디오 장치 등.


권은비의 신작 '실패의 장소 안에 퇴비' 일부. 책상과 의자, 감자, 전동장치, 흑연, 종이, 부엽토, 낙엽, 아크릴, 와이어, 오디오 장치 등.

권은비의 신작 '실패의 장소 안에 퇴비' 일부. 책상과 의자, 감자, 전동장치, 흑연, 종이, 부엽토, 낙엽, 아크릴, 와이어, 오디오 장치 등.

대안공간은 실험적 미술을 소개하는 공간이다.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미술관이나 갤러리(화랑)와 비슷해 보이지만 성격이 다르다. 아직 시장이나 평단이 눈길을 보내기 이전의 작가들, 관람객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작품도 겁내지 않고 선보인다. 미술관에서 작물을 기르거나 퇴비를 만드는 작업이 현대 미술에서 드물지 않지만 상업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서울과 샌프란시스코의 예술가 11명이 참여한 이번 전시 역시 상업적 성과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전시 소개는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을 겪으면서 우리는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이 유효하지 않음을 알게 됐다’는 문구로 시작한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들은 돈과 거래 없이도 자연을 매개로 생산과 분배, 협력과 공생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김나영, 그레고리 마스의 존 르 써클(감자). 1995년 작 John Le Carée(potatoes). diasec(printed in 1999).

김나영, 그레고리 마스의 존 르 써클(감자). 1995년 작 John Le Carée(potatoes). diasec(printed in 1999).


농부인 이다슬 작가는 전시장 초입에서 자신에게는 제거해야 할 대상인 잡초를 기른다. 김민호 기자

농부인 이다슬 작가는 전시장 초입에서 자신에게는 제거해야 할 대상인 잡초를 기른다. 김민호 기자

권은비의 작품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서 보는 재미가 있다. 퇴비가 직접 보이거나 냄새가 나지는 않지만 플라스틱 뚜껑이 달린 바위 자체가 이질적이다. 관람객은 계약서를 읽으면서 바위 안에 퇴비가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된다. 책상 위에는 싹이 난 감자가 전동장치에 의해 천천히 회전한다. 머리를 들면 ‘CAPITAL(자본)’이라는 영문이 세로로 반복해 쓰여진 형태의 움직이는 조각으로 제자리에서 돌고 있다. CAPITAL이라는 단어는 아래로 갈수록 형체가 뭉개지고 쪼그라든다.

그런가 하면 잡초를 기르는 농부도 있다. 제주의 1,983㎡ 규모 땅에서 아로니아 농사를 짓는 6년 차 농부 이다슬은 환삼 덩굴이라는 잡초를 전시장에서 기른다. 작가는 제주에서도 잡초를 기르며 상세한 일지를 적고 사진을 찍었다. 밭은 동네 어르신들로부터 혼날 정도로 아로니아 대신 잡초로 채워졌다. 나팔꽃이 농사에서는 잡초이듯, 생물은 관점에 따라 대접이 달라진다. 채소가 음식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도구로 조각을 만든 김나영과 그레고리 마스의 작업 ‘야외의 죽음’ 등도 돋보인다. 심각한 주제를 무겁지 않게 풀어낸 작품들이다.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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