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주째인 히잡 시위 핵심 동력은 10대 여성
"용감하지 못해 저항도 못한 기성세대와 달라"
"이란의 10대에겐 자유가 필요해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요. 인간으로서 더 나은 선택을 바라는 건 자연스러운 일 아닌가요."
이란 여고생 사리나 에스마일자데(16)는 올해 5월 유튜브에 올린 영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구독자 3만여 명인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다. 한 영상 속에서 그는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화려한 셔츠를 입은 채 춤추고 노래한다. 다른 영상에는 남색 히잡으로 머리카락을 가리고 외출하는 또 다른 그가 있다.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가 의문사한 22세 마흐사 아미니 사건이 촉발한 반정부 시위에 에스마일자데가 참여한 건 '더 나은 삶'을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다. 에스마일자데는 그러나 아미니의 뒤를 따르고 말았다. 지난달 22일 학교 수업을 마치고 친구들과 시위에 나갔다가 의문사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시위 4주차, 10대 여성 잇단 죽음으로 확산
아미니의 죽음이 불붙인 시위가 4주째로 접어들었지만, 불길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에스마일자데의 죽음이 시위에 다시 불을 붙였다고 보도했다.
이란 정부의 대처는 아미니 때와 똑같았다. 아미니가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발표한 정부는 에스마일자데가 5층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제앰네스티는 에스마일자데가 시위 도중 보안군의 진압봉에 머리를 심하게 맞아 숨졌다고 반박했다. 아미니도 가혹행위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마일자데의 유족은 시신의 얼굴에 상처가 여러 개 나 있고 오른쪽 이마는 꺼져 있었다고 이란인권단체(IHR)에 증언했다. 가족들은 장례식을 치르지 못할 정도로 정부의 협박에 시달렸다.
시위 참여자가 의문사하고 정부가 은폐하려 한 사례는 또 있다. 지난달 20일 니카 샤카라미라는 16세 여성이 테헤란 시위에 참가했다 숨졌는데, 이란 정부는 추락사라고 발표한 뒤 사인에 대해 거짓말을 하라고 유족을 압박했다. 친구와의 전화통화에서 "경찰에 쫓기고 있다"고 한 게 샤카라미라의 마지막 행적이었다.
WP는 "두 죽음이 섬뜩할 정도로 유사하다"며 "경찰이 10대를 표적으로 삼아 체포하고 경우에 따라 살해하는 것은 광범위한 패턴"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시위 핵심엔 10대… "그들은 항의했고, 그럴 권리가 있다"
10대 여성의 잇단 죽음은 시위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올랐다. 샤카라미가 지난달 쓰레기통 위에 올라선 채 히잡을 불태우는 장면이 담긴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무수히 공유되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영국 BBC페르시아방송 인터뷰에서 호소했다. "딸처럼 나도 어렸을 때부터 히잡 강제 착용에 반대했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저항할 만큼 용감하지 않았다. 우리 세대는 억압, 협박, 굴욕을 받아들였지만, 내 딸은 항의했다. 내 딸에겐 그럴 권리가 있었다."
시위에 동참한 테헤란의 고교 교사 네긴(36)은 "에스마일자데와 샤카라미가 살해된 후 시위가 더 확산하고 있다"며 "시위 초반 '버릇없는 아이들의 소란'으로 묵살하던 남성 지인도 에스마일자데의 죽음을 매우 슬퍼한다"고 WP에 말했다. 그러면서 "이 혁명의 핵심은 에스마일자데와 그의 세대"라며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인식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자신이 무엇을 박탈당하고 있는지 잘 아는 그들은 기성세대와 달리 두려움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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