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사장 공모에 지원한 백광헌·박도형씨
"탈락했지만 주거취약층 목소리 내 뿌듯"
"약자와 동행 인식... 주거문제 해결 시작"
지난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신임 사장 공모에 쪽방촌ㆍ고시원ㆍ반지하에 사는 ‘주거취약계층’ 4명이 지원해 화제를 모았다. LH 사장은 금고 이상 실형 등 법적 결격 사유가 없는 토지ㆍ도시ㆍ주택 분야 전문가라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다. 결과는 모두 1차 서류전형 탈락. 그러나 이들은 낙담하지 않았다. “주거취약계층의 목소리가 전달된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도전”이라고 입을 모았다. 사장직에 도전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주민 백광헌(65)씨와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거주자 박도형(24)씨를 최근 만나 공모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탈락은 실패 아냐"... 해법은 '공공임대주택'
“탈락했다고 지원서에 담긴 목소리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요.”
3일 박도형씨는 종로구 한 카페에서 기자를 환한 표정으로 맞았다. 그는 “면접 기회라도 주어질까 기대한 건 사실”이라고 웃으면서도 “앞으로 할 일이 뭔지 더 명확히 알게 된 계기였다”고 했다. 주거취약계층의 목소리를 더 크게 내겠다는 다짐이다.
지난달 30일 동자동 쪽방촌 입구에서 인터뷰한 백광헌씨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사장이 되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며 “뿌리 깊은 서울의 주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에 만족한다”고 도전 소감을 밝혔다.
도시주택 분야에 별다른 경력이 없는 두 사람은 지원서와 연구활동, 경영계획서 등 서류 작업에서부터 벽에 부닥쳤다. 하지만 며칠 밤을 뜬눈으로 지새며 완성한 경영계획서엔 공통점이 있었다. ‘공공임대주택 확대’가 그것이다.
백씨는 “중단된 동자동 쪽방촌 공공주택사업을 조속히 재개하고, 전국 쪽방촌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박씨는 청년, 신혼부부 등을 위한 행복주택 입주가 ‘로또’에 비유될 정도로 당첨 확률이 낮다는 점을 거론하며 “입주시스템의 획기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일례로 개발을 앞둔 용산정비창 부지 등에 관련 예산을 투입해 공공임대주택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거취약층 목소리 정책에 반영돼야"
두 사람은 새로 선임될 LH 사장이 갖춰야 할 덕목으로 ‘감수성’을 꼽았다. ‘지옥고(반지하ㆍ옥탑방ㆍ고시원)’나 쪽방촌을 직접 찾아보고 듣고 느낀 점을 정책에 반영해 달라는 의미다.
백씨는 동자동 쪽방촌에서만 20년을 거주했다. 한 평(3.3㎡)이 채 안 되는 단칸방에 살면서도 이웃주민이 세상을 떠나면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도록 공영장례를 도맡아 치러준다. 그는 “서울은 돈 많은 사람만 사는 도시가 아니다”라며 “열악하기 그지없는 쪽방촌 주민의 삶을 보면 주거권 보장이 얼마나 시급한지 알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증금 100만 원짜리 반지하에 사는 박씨는 올여름 이 일대에 폭우가 쏟아졌을 때 다른 주민들과 함께 밤새 배수구를 뚫었다. 이들은 반지하 거주자들의 연이은 사망 소식에 비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정부가 약자와 동행하겠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주거 문제 해결의 시작”이라며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주거취약층을 방치하지 말고 당장 행동에 옮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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