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영화 '플랜 75'의 하야카와 지에 감독
75세가 되면 안락사를 신청할 수 있다. 죽기 전 삶을 즐기라며 10만 엔을 주기도 한다. 노인 혐오범죄 확산 방지와 고령화 사회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미래 일본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다. 고독과 빈곤에 내몰린 고령자라면 심각하게 고민해 볼 만한 사안. 만약 이런 정책이 국가 주도로 추진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끔찍한 가정을 바탕으로 한 일본 영화 ‘플랜 75’는 지난 5월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첫 상영돼 화제를 모았다. 5일 막을 올린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화제작 중 하나이기도 하다. 9일 오전 ‘플랜 75’의 하야카와 지에(46) 감독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부산영화제 단편영화를 대상으로 한 선재상 심사위원이기도 하다.
2016년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영감을 줬다. 20대 범인이 가나가와현의 한 지적장애인 보호시설에서 19명을 살해하고, 26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사건이었다. 범인은 ‘장애인이 사회에 도움이 안 된다' '나랏돈으로 장애인을 부양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라는 내용이 담긴 성명을 냈다. 당시 하야카와 감독은 '사회에 도움이 안 되면 살아갈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75세일까. 하야카와 감독은 “몇 년 전 일본 정부가 75세 이상 노인들을 ‘후기 고령자’라고 칭한 것에서 착안했다”고 말했다. “국가가 연령을 기준으로 호칭을 구분하는 게 이상했고 후기라는 단어의 어감 자체가 마지막이라는 느낌을 준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어찌 생각하냐고 주변에 물으니 괜찮은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영화로 다뤄도 황당무계하진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화 속에선 75세 이상이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여러 경제 효과가 나타난다. 노인들의 선택을 독려하고 안락사를 돕기 위한 일자리가 생기고, 노인 지원비가 줄어든다. 65세로 낮춰 실시하자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효과가 만만치 않다. 하야카와 감독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굉장히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걸 추구한다”며 “하지만 사람 목숨까지 경제적 척도로 재는 것은 이상하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속 노인들은 불우하다. 오랜만에 먹은 기름진 음식에 구토를 하거나 임대료가 없어 살 곳을 걱정한다. 기댈 가족조차 없다. 고심 끝에 안락사를 선택할 수밖에. 하야카와 감독은 “노후 불안에 시달리는 노인들에게 사회가 도움을 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야카와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 ‘플랜 75’는 칸영화제에서 신진 감독을 대상으로 하는 황금카메라상 특별언급상을 받았다. 그는 “영화에 참여하거나 도움 주신 분들에게 은혜를 갚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수상 당시를 떠올렸다. 부산영화제 방문은 이번이 3번째. 하야카와 감독은 2014년 ‘나이아가라’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아시아단편경선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국 영화제들이 작품을 만들면 자주 불러줘 제게 굉장히 큰 격려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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