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현무-2C 미사일 낙탄 사고
군 및 지자체 사고 상황 알리지 않아 혼란 증폭
말 그대로 한밤중 날벼락이었다. 우리 군이 북한의 도발을 겨냥해 4일 경고사격으로 발사한 미사일이 뒤로 날아가면서 해당 군부대에 떨어지는 초유의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이후 군 당국은 치솟는 화염을 바라보며 밤새 전쟁 공포에 시달린 인근 주민들에게 상황을 신속하게 제대로 알리지 않아 비난이 가중됐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맞서 국민들을 안심시키기는커녕 우리 군의 대비태세가 얼마나 허술한지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불안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는 별문제가 없어 보였다. 이날 오전 북한이 일본 상공을 넘어 태평양으로 4,500㎞ 날아간 중거리탄도미사일에 맞서 우리 군도 대응사격을 준비했다. 발사대는 북한 미사일과 같은 동해를 향했다. 장소는 강원 강릉의 모 공군부대. 바다에 접해 있어 미사일 발사의 사고위험을 줄일 수 있는 곳이다.
오후 11시쯤 현무-2C 지대지 탄도미사일을 쐈다. 군 당국은 "미사일 낙하해역 주변에 항해경보를 내리고 합동홍보팀을 통해 어촌계와 마을회관 등에 미리 알렸다"고 설명했다. 대북 응징의 의미가 담긴 갑작스러운 사격인지라 부대 인근 주민들이 충분히 통보받았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군 관계자는 "사격 전 외관검사와 시스템 점검 등 절차에 따라 살펴봤고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첫 발부터 말썽이었다. 현무-2C 미사일은 당초 조준한 동해가 아닌 뒤로 날아가 후방을 타격했다. 순간 굉음이 울리고 화염이 치솟았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현무 미사일이 발사 직후 비행단 내 골프장 페어웨이에 비정상적으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발사부터 낙탄까지 채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셈이다. 불발된 탄두는 발사지점에서 1㎞, 추진체는 그보다 400m 더 날아간 곳에서 발견됐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발사 직후인 오후 11시 1분 비행단 인근 강릉 월호평동에서 화재신고가 접수됐다. 하지만 군의 '훈련 중'이라는 설명에 출동한 소방당국은 조치 없이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퍼진 현장 사진과 영상에는 거센 불길이 포착됐다.
군 관계자는 “추진체 속에 들어 있던 추진제가 연소하면서 화재가 난 것처럼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은 지난 2005년 대구 달성터널에서 발생한 나이키 미사일 추진체 화재 당시에도 “고체연료는 불이 나면 자연 연소된다”며 폭발이 아니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번에 사고가 발생한 현무-2C 미사일 역시 고체연료를 탑재하고 있다.
시작부터 헝클어졌지만 군은 예정된 미사일 발사를 멈추지 않았다. 추가로 현무 미사일 1발을 쏜 데 이어 5일 오전 1시쯤 에이태큼스(ATACMS)를 한미 양국군이 각각 2발씩 발사했다. 후속 발사 이후 하늘을 향해 불기둥이 솟구치는 듯한 모습이 강릉 시내에서 포착될 정도였다. 발사 폭음으로 추정되는 큰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고 주민들은 전했다.
다행히 군 장병과 민간인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현무 미사일이 떨어진 곳은 주변 민가와 불과 700m 거리였다. 인근 마을에 추진체가 떨어졌거나, 탄두가 폭발했을 경우 대형 참사로 연결될 수도 있었다. 부대 생활관이나 건물에 충격을 주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군 관계자는 "위험 반경 300m 안에 있던 장병들을 외곽으로 대피시켰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이후 '모르쇠'로 일관하며 사고 상황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심야시간이라는 핑계를 대며 주민 불편을 이유로 들었지만, 그 사이 온갖 소문이 확산되면서 혼란은 증폭되고 주민들은 불안에 떨었다.
군은 5일 오전 7시쯤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이후 3시간쯤 더 지나서야 사고 당시 상황을 취재진에게 설명했다. 하지만 사고 원인에 대해 속시원한 내용은 없었다. 북한의 도발에 맞서려다 자칫 우리 국민을 잡을 뻔했지만 군은 "사격을 사전에 공지했다"고 발뺌하면서 "우발 상황에 적절히 조치하지 못해 유감스럽다"는 군색한 변명만 되뇌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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