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X' 권상우, 실직한 가장의 인생 2막
"코미디 연기할 때 가장 행복"
대기업에서 초고속 승진으로 탄탄대로를 걷던 윤대욱(권상우)은 회사에서 갑자기 '사망 선고'를 받았다. 권고사직 통보로 하루아침에 직장과 내 집 마련의 꿈을 놓친 중년은 원형탈모로 머리카락까지 잃는다. 오호통재라, 그런 가장은 재취업을 위해 못 할 게 없다. "밤하늘에 펄, 베터 댄 유어 루이비통~". "젊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면접관의 말에 대욱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Z세대의 '18번'인 비오의 '카운팅 스타즈'(2021)를 직접 부르며 춤까지 춘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웨이브의 새 드라마 '위기의 X' 속 권상우(46)의 모습이다. "랩까진 안 하려고 했는데, 가장으로 그깟 자존심쯤이야란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NG 몇 번 나고 스태프들은 웃고, 민망해서 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몇 줄 되지도 않는 랩은 왜 그렇게 기억이 안 나는지..." 4일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권상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웨이브에서 지난달 2일 공개된 뒤 3주 연속 재생 1위(오리지널 콘텐츠 기준)를 차지한 '위기의 X'에서 권상우는 실직 후 인생 2막을 시작하려는 가장의 좌충우돌을 '웃프게' 연기해 시청자들의 몰입을 이끈다. 영화 '탐정' 1~2(2015·2018)부터 '위기의 X'까지. 쌍절곤을 돌리며 초콜릿 복근(영화 '말죽거리 잔혹사'·2004)을 뽐냈던 청춘스타는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가 돼 생활 가장 역의 단골손님이 됐다. 가정을 꾸린 지 올해 14년 차에 접어든 그는 "대욱이 영끌해 사 모은 주식의 떡락으로 실의에 빠지지만 그 아픔은 실제 내가 더 크게 겪고 있다"며 "어떤 에피소드를 던져줘도 (가장 연기를) 리얼하게 할 수 있다"며 웃었다.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아버지를 암으로 여읜 그는 가장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노인회관에 딸린 골방에서 자란 한류스타는 평범한 이들의 '존버(힘들게 버팀)'의 힘을 믿는다. 1998년 패션모델로 데뷔했던 20대 시절 그에겐 연기력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와 드라마 '천국의 계단'(2003)이 연달아 성공해 스타 반열에 올랐지만 그는 작품마다 벼랑 끝에 선 기분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배우로서 그의 자산은 "성실함"뿐이었다. 권상우는 "결혼하고 나서는 거짓말처럼 광고가 뚝 끊겼다"며 "4~5년 동안 혼란스럽다가 '내가 연기를 시작한 게 광고모델을 하려고 한 게 아니고 작품은 영원히 남는다'는 생각으로 고민에서 해방된 뒤엔 일이 즐겁고 배우란 직업이 어느 때보다 소중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가치관이 변한 뒤 그의 행보도 180도 달라졌다. 늘 '폼'만 잡던 배우는 '탐정' 시리즈와 '날아라 개천용'(2020) 등으로 코미디 연기에 날을 벼렸다. 권상우는 "코미디 연기할 때 제일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눈에 주름지는 게 싫어 젊어선 카메라 앞에서 잘 웃지도 않았다는 그는 이젠 크게 웃으면서 하는 연기가 좋다고 했다. 2001년 드라마 '맛있는 청혼'으로 연기를 시작한 그는 이제 조연도 마다하지 않는다. 권상우는 31일 방송될 KBS2 드라마 '커튼콜'에서 강하늘과 하지원의 뒤에서 힘을 보탠다. "옛날이었으면 '주인공도 아닌데 왜 해'라며 다 거절했을 거예요. 늘 가속만 했던 예전과는 다르죠. 이젠 감속해야 할 타이밍도 알게 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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