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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무, 천수무를 따지지 않는 우리 김장

입력
2022.09.28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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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금 우리가 먹는 김치는 거의 통배추김치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9세기 중반 이후에 퍼져나간 방식이다. 젓갈과 고춧가루를 쓰고, 무를 채 썰어 속을 버무려 넣는 현재와 유사한 기술이 퍼져나간 시점으로 유추하고 있다. 올여름 김치는 정말 여러 가지로 최악이었다. 아니,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비가 잦고 이상고온, 태풍까지 영향을 끼쳐 여름 배추와 무 작황이 엉망이었기 때문이다. 재료가 비싸든 싸든 늘 진열해 팔던 마트 김치조차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누가 우스갯소리로 유럽 김치를 수입하자고까지 주장했다. 유럽 김치는 다른 풍토, 아주 작은 소비시장 탓에 김치값이 엄청나게 비싸다. 한국 것과 유사한 배추가 있긴 해도, 양념조달비가 높은 까닭이다. 그런 유럽 김치의 수입 말이 나올 지경이었다. 야키니쿠(일본의 한국식 불고기)집에서 한 접시에 5,000원 이상 받을 만큼 김치값이 턱없이 높은 일본보다 우리의 올여름 김치가 더 비쌌다고들 한다.

이런 김치 파동은 앞으로도 잦을 게 분명하다. 기후변화로 작황이 들쑥날쑥하다. 폭염이나 비, 잦아진 태풍으로 배추가 다 날아가버리는 일이 다반사가 됐다. 올해 김장시장도 당연히 흐림이다. 김장 배추 주산지인 전남 해남과 충북 괴산 등지가 태풍을 피해서 다행이지만, 고랭지 형편이 안 좋다고 한다. 역시 비와 태풍 탓이다. 김치 수요는 여전한데 뉴스에서 이런 문제를 크게 다루지도 않는다. 김장이 겨울 초입의 큰일, 월동 준비라는 한국인의 생활패턴이 사라진 까닭이다. 옛날, 동네마다 배추와 무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풍요를 구가하던 시절은 이제 이래저래 상상의 풍경이 된 건 물론이다.

김치는 민족의 자랑이라지만, 새로운 세대는 싫어하는 음식으로 꼽기도 한다. 장차 어떤 방식으로 김치 소비가 일어나고 문화가 만들어질지 예측할 수 없다. 김치는 민족 고유의 음식이라는 점에는 다들 동의하지만 각론에서는 생각이 다르다. 김치 안 먹는, 관심 없는 시민도 적지 않다는 뜻이다. 오히려 외국인들이 김치에 열광하는 경우가 많다. 김치는 지금 어떤 거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는 것 같다.

다른 얘기지만, 김치가 죄다 통배추김치 일색이 된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다. 통배추김치보다 모양과 맛이 다양한 온갖 무, 가지, 파, 미나리, 어육, 동과, 박, 오이 등 산물로 김치를 담그던 18, 19세기를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김치를 만드는 방식도 편협해지고 전국이 통일되다시피 됐다. 배추를 절이고 거의 똑같은 양념을 버무려 김치냉장고에서 익힌다. 사철 비슷한 양상이다. 그나마, 장은 안 담가도 통배추김치나마 김장문화는 아직 살아남은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지만. 여담이지만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일상의 김치로 먹었던 다양한 섞박지며 장김치 같은 건 또 어디 가서 구해 먹나 싶기도 하다.

나는 무 김치에 관심이 많아서 이런저런 맛과 조직감의 무를 구해보려고 노력했다. 현실은 어렵다. 품종 구분이 거의 없다시피 유통되고, 지역성도 그다지 또렷하지 못하다. 동치미를 만들면 조직감이 독특하고 맛있는 초롱무며 천수무 같은 품종을 마트에서 만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무를 품종별로 따져 사는 문화가 사라지다보니, 공급도 그런 셈이다. 푸른 이파리가 넓고 풍성해 보쌈을 만들기 좋았다는 개성배추도 일부러 인터넷 직거래 장터나 뒤져야 구한다. 김장이 유네스코 등재 유산이라는 자랑이 무색한 대한민국이다.


박찬일 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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