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정책 재고해라" 사실상 경고
미국 재무부도 불편한 속내 드러내
정책 추진하다 정권 뺏길까 고민
선진국 경제 정책에 좀처럼 쓴소리를 내지 않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영국 정부 감세정책에 강도 높은 비판을 가했다.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휘청대고 물가상승(인플레이션) 심화 우려마저 커지자 이례적 개입에 나선 것이다. 출범 겨우 3주 만에 정권교체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리즈 트러스호(號)는 시작부터 거센 풍랑에 휩쓸리게 됐다.
27일(현지시간) IMF는 영국을 겨냥한 성명에서 “많은 나라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지는 점을 감안, 목표가 불분명한 대규모 재정 지출을 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이 추구하는 목표가 상반되지 않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영국 물가 상승률이 두 자릿수로 치솟는 상황에서 대규모 감세정책은 사실상 확장 재정정책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을 더 높일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특히 금리 인상으로 물가를 잡으려는 중앙은행과 정부가 엇박자 행보를 보이는 것은 금융시장 혼란을 키울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영국 정부는 23일 경기 부양을 위해 450억 파운드(약 69조 원) 규모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정책 공개 후 재정난 우려가 커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졌다. 채권시장에서는 영국 국채 투매 현상이 이어졌고, 파운드화 가치는 역대 최저치로 폭락했다. 이날 IMF의 성명은 영국의 감세 정책이 세계 경제에 독이 될 수 있는 만큼 사실상 정책을 재고하라고 엄포를 놓은 셈이다.
미국에서도 영국 새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각국 긴축 조치에 반하는 영국의 행보가 불편하다고 에둘러 말한 셈이다. “영국이 신흥국 정부처럼 운영되고 있다(헤지펀드 거물 레이 달리오)”거나 “영국이 구제금융으로 가는 길이 열렸다(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등 노골적인 조롱도 이어졌다.
트러스 총리의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됐다. 자신의 정책추진 영향으로 파운드화 가치가 폭락하는 것을 직접 목격한 데다, IMF는 물론 미국마저 경제 정책을 수정하라고 압박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대규모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를 앞세워 총리에 당선된 만큼, 정책을 시행해 보지도 않고 폐기하는 것도 지지자들을 고려하면 쉬운 선택지는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모른 체할 수도 없다. 정책을 고집하다 반대파에 정권을 뺏길 수 있어서다. 당장 감세안 발표 이후 돈 가치가 뚝뚝 떨어지면서 집권 보수당 지지율도 흔들리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가 이달 23~25일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2년째 야당인 노동당 지지율(45%)이 보수당(28%)보다 무려 17%포인트나 앞섰다.
케네스 로고프 미국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노동당이 너무 좌경화하지 않는다면 다음 총선에서 승리가 유력한 상황”이라며 “이번 감세정책이 노동당 정권에서 철회될 것이라고들 생각한다면 노동당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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