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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 취하해달라" 피해자 두번 울리는 '합의 스토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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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 취하해달라" 피해자 두번 울리는 '합의 스토킹'

입력
2022.09.27 04:3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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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통보에 앙심… 성범죄 저지른 뒤 합의 강요
'스토킹 피해' 호소에도 결국 재판 과정서 합의해
합의가 감형 핵심… "법원, 진정성 엄격히 따져야"

스토킹·성범죄 혐의 관련 합의 강요. 송정근 기자

스토킹·성범죄 혐의 관련 합의 강요. 송정근 기자

A씨에게 2021년은 악몽의 한 해였다. A씨의 이별 통보에 헤어진 남자친구가 스토킹을 시작했고 성폭행까지 당했기 때문이다.

A씨의 고통은 스토킹으로 끝나지 않았다. 강간죄로 수사를 받게 된 가해자의 괴롭힘이 A씨를 계속 힘들게 했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주차장으로 끌려간 A씨에게 미리 작성한 합의서와 고소취소장을 들이밀었다. 사인을 하라는 협박이었다. 경찰에는 "스토킹을 당해 두려웠다"고 털어놨지만, 결국 가해자의 요구를 이겨내지 못했다. 재판부에 합의서와 처벌불원서가 제출됐고, 가해자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을 수 있었다.

스토킹 범죄 가해자가 합의서를 받아내기 위해 피해자를 협박하고, 재차 범죄를 저지르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선처와 감형을 받겠다는 가해자들의 욕심은 사실상 또다른 형태의 스토킹이나 다름없어, 피해자들의 고통은 더욱 커지는 셈이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좀 더 꼼꼼하게 합의 과정과 합의서의 진정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일보가 2020년 10월부터 올해 6월까지 보복협박 또는 협박 혐의가 추가된 스토킹·성범죄·가정폭력 사건 관련 판결문 42건을 분석한 결과,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합의를 강요하거나 고소 취하를 협박한 사례가 15건에 달했다. 스토킹 범죄 가해자 3명 중 1명은 피해자가 원치 않은 합의를 시도했다가 협박이나 강요죄가 더해졌다는 뜻이다.

가해자들은 문자폭탄을 보내거나 주거지를 반복적으로 찾아가 공포심을 조성하는 방식으로 피해자에게 고소 취하와 합의를 종용했다. 일부는 합의를 거부하는 피해자에게 폭력을 가하기도 했다.

식당 사장이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고 외상을 잘 해주지 않는다며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B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B씨는 한 달간 피해자 주거지를 찾아가고 64회에 걸쳐 전화를 했다. 스토킹으로 수사를 받게 된 그는 피해자 접근 금지 등 잠정조치를 위반하고, 피해자를 수차례 찾아가 고소를 취하하라고 협박했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과 관련해 서울 신당역에 마련된 추모 공간. 연합뉴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과 관련해 서울 신당역에 마련된 추모 공간. 연합뉴스

가해자가 합의에 매달리는 이유는 감형 때문이다. 가해자들은 스토킹 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스토킹 범죄가 아니라도 대부분의 재판에서 피해자와의 합의는 중요한 감형 사유다.

전문가들은 합의를 좀 더 꼼꼼하게 심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합의의 진정성을 따져보고, 그 과정에서 강요나 협박이 있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서혜진 더라이트하우스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재판부에서 적극적으로 양형조사관에게 조사를 주문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판사 재량에 따라 '감형 가능한 합의'를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예컨대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규정한 '처벌불원' 혹은 '합의'를 평가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신진희 성범죄 피해자 전문 변호사는 "지인에 의한 성범죄·스토킹 범죄 피해자들은 2차 가해가 두려워 어쩔 수 없이 합의하는 경우가 많다"며 "합의하지 않으면 재차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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