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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게르만주의와 범슬라브주의

입력
2022.09.30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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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0 뮌헨협정

1938년 9월 29일 뮌헨협정 체결 당시 체임벌린(왼쪽)과 히틀러.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College Park

1938년 9월 29일 뮌헨협정 체결 당시 체임벌린(왼쪽)과 히틀러.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 College Park

대독일주의(범게르만주의)는 1·2차 세계대전 전범국 독일의 기저 이데올로기다. 게르만 민족이 단일 국가로 뭉쳐야 한다는 이 기형적 민족주의는 1차 대전 패전 이후의 국민적 열패감과 복수심에 나치 인종주의까지 결합해 2차 대전 독일 정서의 핵이 됐다. 카를 하우스호퍼의 팽창주의 지정학, 독일 지리학자 프리드리히 라첼의 ‘레벤스라움(Lebensraum·생활권)’, 즉 국가라는 유기체가 생존, 번영하는 데 필요한 생태계적 공간권 개념이 대독일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동원됐다.

나치 히틀러의 첫 타깃은 당시 체코슬로바키아 서부 수데텐란트(Sudeten-Land)였다. 독일 동쪽 국경선을 움푹하게 파고 든 그 지역은 30년전쟁 직후부터 게르만인이 대거 이주한 곳이었다. 주민 절대다수가 독일계여서,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의 체코어 의무교육 등 문화적 동화정책에 적대적이었고, 옛 헝가리 영토였던 동부 농업 지역(현 슬로바키아)에 비해 중공업과 모직산업이 발달했다.

1938년 3월 오스트리아를 삼킨 히틀러는 그해 9월 수데텐란트 친독일계 정당의 분리독립 요구를 빌미로, 체코슬로바키아 정부에 한 달 내 그 지역 할양 및 군대 철수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정부는 군동원령을 내리고, 우방국 영국과 프랑스의 지원을 요청했다. 당시 영국 총리 네빌 체임벌린은 전쟁을 원치 않았고 준비도 미흡했다. 그는 마뜩잖아 하던 프랑스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를 설득하다시피 해서 그해 9월 30일 히틀러와 ‘뮌헨협약’을 맺었다. 독일에 수데텐란트를 넘겨주는 대신 더 이상의 군사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나치는 수데텐란트를 교두보 삼아 이듬해 3월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하고 9월 폴란드로 진격, 2차 대전을 일으켰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인 지난 2월 중순, 영국 국방장관 벤 월러스가 법무장관 브랜던 루이스와 대화 도중 “뮌헨(조약과 외교 실패)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고 말한 사실이 보도된 적이 있다. 독일의 범게르만주의처럼, 러시아에는 범슬라브주의가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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