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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말에서 낯선 향기가 난다

입력
2022.09.24 04:3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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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P 연합뉴스

AFP 연합뉴스

며칠 전 '마수걸이 골이 터졌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축구선수 손흥민의 골이 신문을 장식한 날이었다. '마수, 마수걸이'는 맨 처음으로 물건을 파는 일을 이른다. 팔린 물건으로 미루어 그날의 장사 운을 예측하는 의미도 있다. 마수걸이 골이 대기록으로 이어졌으니, 그 말이 딱 맞는다. 우리말 마수는 정작 일본어로 자주 오해받는 말이다. 우리 귀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라면사리'도 오해를 받는 말이다. 사리는 보통 국수, 새끼, 실 따위를 동그랗게 포개어 감은 뭉치이다. 국수를 말아두거나 뱀이 똬리를 감는 것을 '사리다'라고 하며, '몸을 사리다, 마음을 사리다'는 말이 남아 있다. 그런데도 국수 한 사리, 냉면 두 사리 등이 종종 일본말의 잔재로 오해받는데, 이 말이 음식과 같이 쓰이다 보니 접시의 일본어 '사라'와 혼동된 탓이다.

'에누리'도 그러하다. 흔히 값을 깎는 일에 많이 쓰이지만, '그 사람이 하는 말에는 에누리도 섞여 있다'며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일에도 말할 수 있다. 용서하거나 사정을 봐주는 일을 뜻하기도 한다. '디스카운트'보다 발음하기 어려운 것도 아닌데도 자주 쓰이지 않는 것은 말의 정체성에 오해가 있기 때문이다. 빈틈없이 아주 여무진 사람을 이르는 '모도리',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들어 억울하다는 뜻인 '애매하다'도 써도 문제가 없는 우리말이다.

이번 여름 키르기스스탄의 대학교를 방문했을 때, 학교 관계자로 있는 어느 젊은 교수를 만났다. 한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가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현지인이다. 한국에서 온 손님들 앞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공식 행사를 잘 진행하던 중에,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라는 말이 섞여 나왔다. 일본어 문법이 섞인 말을 한국어로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 나중에 그 말의 정체를 알려주었다. 그 교수는 무척 놀라는 얼굴을 했다. 유학 중에 한국 사람들에게서 너무나도 자주 들은 말이라 한 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말은 이제 한국 사람들만 듣고 쓰는 말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확인했다.

흔히 우리는 익숙하면 우리말이고, 낯설면 정체불명의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할수록, 우리말이 아닌 것은 가능한 한 경계하며 스스로 낯설게 하도록 애써야 한다. 아울러 희미해져 가는 우리말이라면 더 자주 불러서, 귀에 익히는 노력도 해야 한다. 오늘은 '마수, 사리, 에누리, 모도리'가 한 번 더 익숙해지는 날이다.

이미향 영남대 글로벌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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