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3연속 '자이언트 스텝'에 환율 1,400원
추경호, "연준 긴축 예상치 상회" 당혹감
미국발(發) ‘3고(고환율ㆍ고물가ㆍ고금리)’가 한국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자국 인플레이션을 잡을 궁리에만 여념 없는 미국 중앙은행의 이례적 금리 인상에 애먼 한국이 유탄을 맞은 셈이다. “길게 보겠다”는 말에는 당장 묘수가 없어 난처한 정부 처지가 반영돼 있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저성장
22일 원ㆍ달러 환율은 전장보다 15.5원 높은 1,409.7원에 마감했다. 환율이 1,400원을 돌파한 것은 2009년 3월 31일(고가 1,422원) 이후 13년 6개월 만이다. 이는 간밤 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의 연속 세 번째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 단행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전문가들은 네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예상보다 더 이른 시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를 향해 내려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웬만해서는 멈추지 않겠다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강경 발언이 근거다. 원화 가치 추락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고환율은 고물가를 부추긴다. 달러 강세가 곧 수입 물가 상승이기 때문이다. 수입 물가의 오름세가 지속되면 지난달 주춤해진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다시 힘을 받게 된다. 가뜩이나 원화가 약세인 상황에서 물가마저 치솟을 경우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인상의 속도를 높일 수밖에 없다. 고금리는 경기에 악재다. 자금을 조달하기 힘들어진 기업의 투자 위축은 불가피하다. 구매력이 떨어지고 갚을 돈은 불어나는 만큼, 가계는 소비를 줄여야 한다.
통상 수출 기업에 유리하게 작용하던 고환율이지만, 이번은 예외다. 달러만 초강세여서 경쟁국들의 통화도 동반 약세를 보이고 있는 형편에, 비싸진 원자재 가격이 도리어 부담이다. 설상가상 주요 교역국인 중국ㆍ미국의 경기가 둔화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망을 더 어둡게 만든다. 지난달 무역수지가 1956년 통계 작성 이래 월간 기준 최대 적자를 기록한 데에도 수출 부진의 영향이 컸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주요 기관이 잇따라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한 것은 이런 사정을 감안한 조처였다.
“환율 쏠림에 적극 대응” 큰소리쳤지만…
정부가 두려워하는 것은 불안감의 확산이다. 안심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이날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주재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공개한 모두발언에서 “과거 금융위기 등에 비해 현재 우리의 대외건전성 지표들은 양호한 상황”이라며 “과도하게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시 구두 개입을 시도하기도 했다. 회의 뒤 기자들에게 “최근 환율 상승에 따른 투기 심리가 확대되는 등 일방적인 쏠림이 나타날 수 있다”며 “그런 경우 적극 대응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당혹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연준의 향후 긴축 경로 등이 당초 시장의 예상 수준을 뛰어넘고 성장 전망이 대폭 하향 조정되면서 국제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됐다”는 모두발언 진단에서 드러났다. “단기간 내 (금융시장) 변동성은 적극 관리하되 내년 이후 경제 흐름까지 고려해 ‘넓고 긴 시계(視界)’를 견지하겠다”는 발언 내용에서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도 회의적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상황은 정부가 구두 개입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며 “이달이 금융통화위원회가 없는 달이어서 금리를 인상하려면 긴급 금통위를 열어야 하는데, 그러면 시장에 부정적 시그널이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지금으로선 정부가 손쓸 방안이 사실상 없다”며 “미국과의 협의가 필요한 만큼 통화스와프(두 국가가 현재 환율로 돈을 교환하고 일정 기간 뒤 애초 정한 환율로 원금을 재교환하는 거래)가 가능할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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