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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입력
2022.09.23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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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전 '역무원 스토킹 피살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한 시민이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일 오전 '역무원 스토킹 피살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한 시민이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 공간을 찾아 고인을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를 가해자와 제대로 분리만 했다면 죽음의 문턱까진 가지 않았을 텐데…"

각종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온라인에서는 스토커에게 살해당한 여성 지하철 역무원 A씨에 대한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A씨는 2019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무려 2년 동안 직장 동료 전주환에게 스토킹을 당했고, 결국 자신의 근무지에서 살해되는 참혹한 결말을 맞았다. 누리꾼들의 말처럼 피해자 보호조치가 엄격하게 이뤄졌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A씨의 유가족 역시 "가해자가 회사 내부 전산망을 통해 피해자 정보를 파악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등 피해자로부터 분리시켜야 했다"고 울분을 토하는 이유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지난해 5월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故) 이예람 중사가 떠오른다. 이 중사의 부모도 "초기 군에서 가해자와 분리만 했어도 딸을 살릴 수 있었다"고 토로했다. 두 여성의 안타까운 죽음은 사회적 공분을 살 만하다. 직장 내 성폭력과 스토킹 범죄에서 제도적으로 피해자의 보호조치가 너무도 취약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보호받지 못했다. 가해자를 피하지 못했고, 직장에서 도움도 받지 못했다. 군대(공군 제20전투비행단)와 회사(서울교통공사)에서 섬처럼 둥둥 떠 있었다. 군대에선 부대원들이 피해자를 회유·협박하며 조직적으로 성폭력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애썼고, 회사는 전과 2범의 전력이 있던 가해자에게 어떠한 제한도 두지 않고 피해자의 정보를 빼낼 수 있게 했다.

두 여성은 제도권 혹은 사법체계 안에서 보호받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역무원 A씨는 지난해 10월 경찰에 처음으로 도움을 요청했고, 두 차례에 걸쳐 전씨를 고소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다. 지난달 재판에서 전씨는 징역 9년을 구형받았다. A씨의 변호인에 따르면 A씨는 재판 당시 "전씨가 절대 보복할 수 없도록 엄중한 처벌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A씨는 변호사를 선임하기 전 경찰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탄원서도 제출하는 등 전씨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이 중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3월 선임인 장 모 중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그는, 당시 상급자들에게 피해 사실을 즉시 보고하고 신고할 뜻을 전했다. 또 군사경찰에 신고함과 동시에 부대 내 상담센터에서 30여 차례 상담도 받았다. 자신을 변호해 줄 국선변호사까지 선임하는 등 스스로를 지킬 만반의 준비를 했다.

둘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 가해자의 처벌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그러나 A씨를 살해한 전씨는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거리를 활보했고, 이 중사의 빠른 신고에도 군검·경은 늑장 수사로 장 중사를 자유롭게 했다.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는 가해자를 바라보던 피해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럼에도 개념 없는 이들은 "좋아하는데 안 받아주니 (전씨가) 여러 가지 폭력적인 대응을 한 것 같다"는 식의 말을 내뱉는다. 미안하지만, 피해자들은 애초에 확실하게 경고했다. "그만하면 안 돼요? 진심으로"라며 분명한 거부 의사를 표현했음에도 끈질기게 성추행을 시도하고, 두 차례 고소까지 하며 거절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스토킹은 멈추지 않았다. 초등학생 딸을 키운다는 한 누리꾼의 글이 떠오른다. "그렇다면 딸에게 거절·거부의 기술까지 가르쳐야 한단 말인가."



강은영 이슈365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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