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일선 전국댐연대공동의장
초등학교 시절 언제나 탄금대로 소풍을 갔다. 당연히 이십리 길을 걷고 견문산 남쪽의 드넓은 늪 위의 긴 다리를 건너야 했다. “아하, 여기서 신립 장군과 병사들이 싸우다가 돌아가셨구나!” 하면서 따가운 햇살을 맞으면서도 즐겁기만 했다. 가물치와 잉어가 버드나무 뿌리에 낳은 빨간 알을 보며 신기해했다.
지금은 뭍인 탄금대는 영월과 속리산에서 온 한강과 달내, 충주천, 요도천, 샛강이 만나는 곳에 있는 섬이었다. 이곳의 거대한 습지는 노는 땅으로 여겨 쓰레기장과 농경지로 쓰다가 성토돼 시설이 들어섰다.
장마철마다 여기서 격정적으로 만났던 물님의 놀이터는 영영 사라진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둑 만들어 물공간을 줄이고 가뒀다. 댐에 ‘집단수용’ 됐다. 물을 죄인이나 마루타처럼 대한 것이다.
그런데도 물을 자원이나 관리대상으로나 보려는 태도는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수질공학, 하천정비법, 수자원공사란 단어는 물의 원천성, 총체성, 신성성을 거부하는 기능적이고 일면적인 용어다. 물사랑학회, 물길조화법, 물사랑공사로 부르면 이상한가?
어린 시절 마당에서 더운 물로 세수한 후 버리는 나를 엄니는 혼내셨다. “뭘 잘못했다고, 왜 혼내는 겨”라며 항의했다. “얘는 그 뜨거운 물을 마당에 버리면 거기 사는 버러지들은 어떻게 해” 졸업장도 없는 엄니 말씀은 잊혀 지지 않는다. 그 어떤 박사의 가르침보다도 귀한 말씀이다.
충주댐에 초대형 물구멍이 세 개 생겼다. 폭우에 의한 댐체 붕괴 방지가 목적이다. 만일 수문을 다 여는 날엔 충주는 물바다가 된다. 하류를 휩쓸고, 당국은 여주 제방을 헐어 서울 구하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좁은 이 나라는 중국 같은 방식으로 수도권을 구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물난리 나니까 ‘물고속도로’를 낸다고 한다. 그저 임기응변 토목적 접근이다. 또 하나의 먹거리가 저들에게 생긴 것이다.
인간이 내주기 싫어도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물의 공간을 마련해 줘야 한다. 농지와 산지를 소유한 것에 대한 보상을 해야 한다. 왜? 물을 저장하고 정화해 주니까. 불투수성 (不透水性) 도심건축물에 대해선 ‘홍수·가뭄 유발세’를 만들어 징수해야 한다. 우수저장 법규를 강화해야 한다. ‘저류지총량체’를 도입하고 중소형 저류공간을 대대적으로 조성해야 한다. 연못이나 습지, 웅덩이 매립금지법도 만들어야 한다.
‘절대 농지’처럼 ‘절대 물공간’을 정해야 한다. 하천 복개를 금하고 옥상 녹화를 더 강화해야 한다. 투수성 포장재 사용 지원도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환경용량에 맞는 균형발전을 도모해야 한다. 물은 충주, 춘천에서 가져가고 그 값은 수공이 받고 공장은 수도권에 지어 세금 내는 짓은 중단돼야 한다.
'배산임수(背山臨水)', 이는 추위와 홍수를 피하는 지혜다. 임수(臨水)는 물가가 아닌 물을 굽어보는 언덕이나 완경사 지형을 말한다. 바다와 강을 메워 짓고 물피해 봤다고 난리다. 지금껏 초대형 피해 없이 살아온 것이 기적이다. 기후 비상인 지금, 이런 기적은 계속 될 것인가? 홍수는 악마가 아니다. 자연현상이다. 이를 수마(水魔), 수재(水災)로 보는 삶의 방식이 변해야 한다. 욕망은 예방의 제방을 헐어 낸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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