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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임시정부 설계자' 신규식... 100년 만에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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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임시정부 설계자' 신규식... 100년 만에 부활하다

입력
2022.09.21 14:33
수정
2022.09.2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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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청주서 22일 순국 100주기 추모식
보훈청, 선생 유족에게 가족관계부 전달
특별기획전서 미공개 사진· 편지 등 공개
23일엔 선생 애국혼 조명하는 학술회의
기념사업추진위 "선생 재평가 사업 시동"

독립운동가 예관 신규식 선생. 문화재청 홈페이지

독립운동가 예관 신규식 선생. 문화재청 홈페이지



독립운동가 예관 신규식(1880~1922) 선생의 애국혼이 순국 100년을 맞아 그의 고향 충북 청주에서 되살아나고 있다.

‘예관신규식선생순국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위원장 박걸순 충북대 교수·이하 예관 기념사업추진위)’는 22일 오후 청남대 임시정부기념관 광장에서 신규식 선생 순국 100주년 추모식을 연다.

추모식에는 장호권 대한광복회장과 황원채 대전지방보훈처장, 황영호 충북도의회 의장, 윤건영 충북교육감, 이범석 청주시장 등이 참석한다. 선생의 외손인 민영백씨와 가문인 고령 신씨 문중 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 한다.

이날 보훈청은 선생의 유족에게 가족관계부를 전달할 예정이다. 선생은 1922년 망명한 중국 상하이에서 순국해 호적이 없었다. 이에 예관 기념사업추진위는 지난 3월부터 선생의 호적 회복에 나섰고, 보훈처와 법원을 거쳐 최근 가족관계부 생성 통보를 받았다.

추모식에 이은 특별기획전에서는 ‘예관의 가계와 형제들’ ‘산동 신씨 출신 독립운동가들’ ‘청년 예관의 실업구국 운동’ 등 선생의 애국 활동을 9개 부문으로 나눠 소상히 전한다.

특히 친필 편지, 가족 사진 등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자료들이 최초 공개될 예정이어서 각계의 이목이 쏠린다. 이번에 공개되는 자료는 부인 조정완 여사와 외아들 상호씨가 1910년대 후반에 함께 찍은 사진, 선생이 순국 4개월 전 사위 민필호에게 심경을 전한 편지 등이다.

아울러 일제가 예관의 동향을 사찰한 극비문서 20점과 함께 예관의 형 신정식 선생에 대한 사찰 문서 등도 공개된다. .

예관이 1911년 상하이 망명 당시 지참했던 자금 규모가 2,000엔(현재 가치 3억원으로 추산)으로 파악한 자료도 발굴돼 전시된다.

신규식 선생 부인과 아들. 중국 상하이 망명 이후인 1910년대 후반에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예관 기념사업추진위 제공

신규식 선생 부인과 아들. 중국 상하이 망명 이후인 1910년대 후반에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예관 기념사업추진위 제공



23일에는 충북미래여성플라자에서 선생의 독립 정신을 조명하는 학술회의가 열린다. 김희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장은 기조 강연에서 신규식의 행적과 위상, 민족 운동사적 평가 등을 들려준다. 한시준 독립기념관장을 좌장으로 한 종합 토론에서는 예관의 사상과 문학, 행적과 관련된 기록의 오류 등을 집중 논의한다.

예관 선생이 순국 4개월 전 사위에게 보낸 편지. 건강을 걱정하는 가족에게 선생은 '염려하지 말라. 동지들과 애정으로 힘을 합하는 데 힘써라'고 썼다. 이 편지는 22일 청남대 임시정부기념관에서 열리는 특별기획전에서 최초 공개된다. 예관 기념사업추진위 제공

예관 선생이 순국 4개월 전 사위에게 보낸 편지. 건강을 걱정하는 가족에게 선생은 '염려하지 말라. 동지들과 애정으로 힘을 합하는 데 힘써라'고 썼다. 이 편지는 22일 청남대 임시정부기념관에서 열리는 특별기획전에서 최초 공개된다. 예관 기념사업추진위 제공



예관 기념사업추진위는 청주지역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회원들이 선생의 독립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4월 꾸렸다.

출범 이후 추진위는 다양한 추모 사업을 벌이고 있다. 7월부터 시민들을 대상으로 선생의 사상과 업적을 알리는 강좌를 열고 있다. 청주지역 고교 6곳을 돌며 선생을 주제로 한 순회 강연도 진행 중이다. 신규식 생가, 신채호 사당, 문의문화재단지 신규식 동상 등 선생 관련 유적지 답사도 이어가고 있다. 추진위는 선생 전집 발간도 준비하고 있다.

예관 선생은 청주시 가덕면 출신이다. 단재 신채호, 경부 신백우와 더불어 청주 동쪽에서 난 세 천재란 뜻의 ‘산동삼재’라 불렸다. 단재와는 한 집안의 아저씨와 조카 관계다. 선생이 태어난 고령 신씨 집성촌에는 애국 계몽을 위해 선생이 세운 문동학원, 덕남사숙 등 교육기관 흔적이 남아 있다. 선생은 을사늑약에 분개해 의병을 일으키려다 실패하자 음독했다.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독이 퍼져 한쪽 눈을 잃고 말았다. 이후 ‘흘겨 본다’는 의미의 예관을 호로 정했다. 호에는 일제를 꼬나보며 독립 의지를 다졌다는 의미도 담겼다고 한다.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의 기틀을 다지고 운동을 확장해 ‘임시정부의 설계자’로 불린다. 그는 상하이 망명 후 쑨원 등 중국 지도자들과 교우하며 비밀 결사인 동제사를 결성했다. 이 동제사가 임시정부 산파역을 했고, 1917년 동제가사 선포한 ‘대동단결선언’은 3·1독립선언문의 모체가 됐다. 그가 상하이에 설립한 박달학원은 독립 운동을 확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도 했다. 선생은 임시정부가 내분에 휩싸이자 당시 국무총리 대리로서 25일간 단식을 강행하다 42세 나이로 순국했다.

이 같은 그의 업적과 독립 정신은 그 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학계에서조차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김동진 예관 기념사업추진위 사무총장은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의 초석을 쌓은 위대한 독립운동가”라며 “순국 100주년을 맞아 선생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화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선생이 신문학을 가르쳤던 고향의 학원은 폐허로 변하는 등 제대로 보존된 것이 없다”며 “늦었지만, 고향의 후손들이 선생의 흔적과 애국 정신을 되살리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한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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