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돌봄은 여행…지금 우리는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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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돌봄은 여행…지금 우리는 어디쯤일까

입력
2022.09.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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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나를 치유하는 마음여행 '힐링워크숍' 체험기

편집자주

내 마음을 돌보는 것은 현대인의 숙제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엔 우울증세를 보인 한국인이 36.8%에 달하는 등 '코로나 블루'까지 더해졌죠. 마찬가지로 우울에피소드를 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 기자가 살핀 마음돌봄 이야기를 전합니다. 연재 구독, 혹은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취재, 체험, 르포, 인터뷰를 빠짐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

기자가 17일 오후 강원 원주시에서 열린 힐링워크숍에 참여하고 있다. 손성원 기자

'내 마음을 알아가기 위해 심리 관련 애플리케이션(앱)을 깔아본 적 있나요?', '관련된 책을 읽거나 일기를 작성해 본 적 있나요?'

마음돌봄에 관심 많은 기자의 눈길을 바로 사로잡는 프로그램 소개글이었다. 다만 조금 주저하는 마음이 들었다. 각종 심리검사를 통해 스스로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나를 더 알아갈 게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의구심을 내려놓고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17일 오후 찾아간 강원 원주시 소재 '소셜테라피 워크룸'에서는 차분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공간 곳곳에는 각종 심리 서적과 식물이 놓여 있어 이곳이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기에 앞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이날 프로그램 진행을 맡은 박혜림 강사는 현재 우울 및 무기력 극복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심리상담 업무를 맡고 있다. 그는 "이전에는 화장품 회사에서 품질 담당 업무를 8년 정도 했지만 직장 내 가스라이팅, 무기력 등의 문제로 퇴사만 4번 경험한 바 있다"고 고백했다.

참고: 해당 기사는 주최 측과 참가자들의 양해를 구해 발언한 사람이 특정되지 않는 선에서 작성됐다.

TA교류분석으로 내 성향 알아가기

기자가 17일 오후 강원 원주시에서 열린 힐링워크숍에서 'TA교류분석' 검사를 하고 있다. 손성원 기자

이날 프로그램의 메인 일정으로는 'TA교류분석'이 있었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에릭 번에 의해 개발된 'TA(Transactional Analysis) 교류분석'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생각·감정·행동을 다루는 심리 기법으로, 자신과 타인, 세상과 교류하는 방식을 분석하는 집단 치료의 한 방법이다. 즉,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자신의 행동심리 패턴을 이해하는 게 이 검사의 특징이다.

검사는 크게 '자아상태(Ego State)'와 '인생태도(Life Position)'를 파악하는 것으로 나뉜다. 각각 50, 40개의 질문에 대해 자신이 어느 정도 해당하는지 체크하면 된다.

'자아상태'는 크게 '통제적 부모', '양육적 부모', '성인', '자유로운 어린이', '순응하는 어린이'로 나뉜다. '통제적 부모'의 특징은 규율, 도덕, 지시, 비판이다. '양육적 부모'는 양육, 보호, 타협, 칭찬 등 관계 중심적이다. '성인'은 논리적, 타산적, 이성적, 합리적이다. '자유로운 어린이'는 자유, 유연성, 무계획, 창의, 호기심, 충동의 키워드를, '순응하는 어린이'는 겸손, 소극, 순응, 눈치, 미숙의 키워드를 갖고 있다.

공간을 만든 곽은혜(34) 대표는 "스스로에 대해 표현을 잘 못하고 남을 늘 먼저 챙기는 특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양육적 부모'와 '순응하는 어린이' 상태가 높게 나왔다"고 말했다. 직장 때문에 원주로 이사온 지 3년 정도 됐다는 직장인 A씨는 "평소 MBTI를 하면 T(논리)가 높게 나오는데 역시나 '통제적 부모' 상태가 높고, '양육적 부모' 상태가 낮게 나왔다"고 분석했다.

'인생태도'는 크게 '타인부정' '타인긍정' '자기긍정' '자기부정'으로 나뉜다. '자기부정'과 '타인긍정'이 높은 사람은 자기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면서 타인에 대해서는 긍정적이고, '자기부정'과 '타인부정'이 높은 사람은 나에 대한 자존감이 낮으면서 타인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자기긍정'과 '타인부정'이 높은 사람은 '나는 항상 옳고, 타인은 잘못했다'고 생각하며, '자기긍정'과 '타인긍정'이 높은 사람은 나와 타인 모두에 대해 긍정적이다.

박혜림 강사는 "언제든 삶의 시련이 올 수 있기 때문에 평생 '자기긍정'과 '타인긍정'이 높은 상태로 지내기는 힘들다"면서 "그저 회복탄력성의 문제일 뿐"이라고 전했다. 기자는 "한때 나도 자존감이 낮아 '자기부정'이 심했는데, 최근 한 책에서 '진정한 겸손은 스스로를 낮추는 게 아니고 남과 나를 함께 세우는 것'이라는 문구를 보고 태도를 바꾸게 됐다"고 고백했다.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 동안 직장인 B씨는 "평상시에는 생각지 못했던 것들을 해 보니 재미있다"며 "나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뭔지 알 것 같다"고 말했다.

박 강사는 각각의 수치를 그래프로 그려본 뒤 '자아상태'와 '인생태도'가 얼마나 비슷한지 살펴보라고 안내했다. '자아상태'는 지금 여기서 표현되는 방식을 보여주고, '인생태도'는 어릴 때부터 굳어진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둘의 그래프가 비슷할수록 스트레스 수준이 낮아진다는 얘기다.

A씨는 "'타인긍정'은 높으나 그와 비슷한 '양육적 부모'는 발현되지 않는 중"이라며 "아마 나 스스로 지금 억압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의 나를 만든 과거 돌아보기

기자가 17일 오후 강원 원주시에서 열린 힐링워크숍에서 '내가 만드는 동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손성원 기자

다음으로는 '내가 만드는 동화' 시간을 가졌다. 현재의 나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사건이나 상황 속의 내 마음을 알아가는 여행을 한 편의 동화로 완성하는 시간이다. 이후 자신이 그린 그림을 동화 구연처럼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 강사는 "장녀로서 늘 동생을 더 챙겨왔다"며 "사람들이 남을 배려하는 태도를 좋아했기에 대학 입학 후 나보다 남을 더 챙겨왔다"고 운을 뗐다. 그는 "그러나 남을 배려했는데 오히려 남들은 나를 힘들게 해 퇴사를 4번 하면서 인생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 때문에 우울증을 겪게 됐지만, 이제는 자신을 챙기면서 비슷한 증상을 겪는 이들을 돕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타지에서 살다가 일 때문에 3년 전 원주로 왔다는 직장인 A씨는 "사실 퇴사 문제 때문에 새벽까지 진정서를 쓰다가 왔다"고 말했다. 그는 "10대 때 여러 문제를 겪으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다"며 "만약 그때 누군가 '그 사람은 너에게 좋지 않는 사람이야'라고 말을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지금 삶을 돌아보고 나니 '나는 지금까지 꽤 많은 고난을 잘 넘어왔구나. 지금 겪고 있는 퇴사 문제도 잘 넘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위로를 받은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기자가 17일 오후 강원 원주시에서 열린 힐링워크숍에서 '내가 만드는 동화' 그림을 그린 후 설명하고 있다. 그림 속 불꽃은 내면의 분노를 뜻한다. 손성원 기자

직장인 B씨는 "가족을 생각하면 그냥 '애증'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며 눈물을 터뜨렸다. 또 "최근 퇴사를 했는데 '나는 왜 정착을 못할까' 하는 생각에 고민이 많아 잠도 잘 못 잤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의 동화를 발표한 뒤 "평소에는 나를 잘 표현하지 못해서인지 오늘 교류분석 결과에서도 '양육적 부모'가 높게 나오고 '통제적 부모'는 낮게 나왔다"며 "그래도 스스로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표현하고 나니 후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년 전 고향인 원주로 돌아와 일을 하고 있다는 직장인 C씨는 "최근 우울과 불안을 겪으며 1년 정도 약을 복용하고 심리상담도 받고 있었다"면서 "이곳에서 어린 시절 동생들을 살펴야 했던 내 마음을 돌아보고 나니 (지금은 그저) 내 무의식을 되돌아보는 시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내가 겪은 아픔, 타인은 겪지 않기를"

곽은혜 대표가 17일 오후 강원 원주시에서 열린 힐링워크숍에서 '내가 만드는 동화' 그림을 그린 후 설명하고 있다. 손성원 기자

곽 대표는 올해 초 이 공간을 만들면서 글쓰기 치유프로그램, 포스터 만들기 클래스 등 심리 치유 관련 워크숍을 기획하고 있다. 지금은 강원도사회적경제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사회적기업육성사업에 선정돼 지원을 받고 있다. 이전에는 약 3년 간 인도네시아에서 컴퓨터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 또한 3년 동안 우울과 불안으로 마음고생을 했던 경험이 있다. 정부지원사업 행정업무를 하면서 우울과 불안장애가 심해졌는데 질환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이 때문에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는 등 불이익을 받아 '나 같은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휴직, 퇴사하고 재입사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사회적 기업을 만들게 됐다고 한다.

곽 대표와 박 강사를 포함해 이날 참가한 모두는 이처럼 업무를 통해 마음고생을 한 경험이 있었다. 직장인 A씨처럼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무의식을 알아차리고 흘려보내는 활동을 통해 모두들 마음속 찌꺼기를 청소하는 작업을 했다. 직장인 A씨는 "사실 새벽까지 진정서를 쓰면서도 너무 괴로웠는데, 나를 돌아보면서 오히려 해결 의지와 희망이 더 강해졌다"며 웃으면서 공간을 나섰다.

서울로 돌아가는 버스 안. 자존감이 낮다며 자책해왔던 과거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그러면서 어느새 나도 모르게 낮아진 '자기부정' 수치를 보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나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마음여행'은 어쩌면 평생 해야 하는 여정이라고 느꼈다.

평범한 이웃들의 비범한 고민, 일상을 지키는 마음돌봄 이야기를 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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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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