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과 절정, 치유와 회복... 미국 詩의 어제와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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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과 절정, 치유와 회복... 미국 詩의 어제와 내일

입력
2022.09.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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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식 최연소 축시 낭송자
어맨다 고먼의 연대·희망 시 70편
'불러줘 우리를, 우리 지닌 것으로'
20세기 페미니즘 문학의 상징
실비아 플라스의 마지막 시집
'에어리얼: 복원본'

미국 최초의 청년 계관시인 어맨다 고먼이 지난 19일 유엔 본부에서 열린 지속가능발전목표 고위급회의에서 시를 낭송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이 시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 우리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고. 이제 / 우리는 알아, 시는 둘 다를 위한 것이었다고- / 타자화된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고."

미국 문학의 어제와 오늘을 대변하는 두 작가의 시집이 국내 출간됐다. 미 대통령 취임식 역대 최연소 축시 낭송자인 어맨다 고먼(24). 그리고 여성 작가들의 활동이 폄하되기 일쑤였던 1950, 1960년대에 펜을 잡은 실비아 플라스(1932~1963)가 주인공이다. 시대의 벽을 뚫고 가려 애쓴 삶의 궤적과 그 과정에서 독창적 문학 세계를 구축한 점이 꼭 닮았다. 고먼의 시('_____[가로막혀서]')가 말하듯 두 작가의 작품은 국경도 시대도 넘어 "타자화된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 더 울림을 준다.

불러줘 우리를, 우리 지닌 것으로·어맨다 고먼 지음·정은귀 옮김·은행나무 발행·248쪽·1만5,000원


'우리'를 희망한 청년 시인 고먼… 시각 깨우는 시

동시대성이 극대화된 고먼의 시집 '불러줘 우리를, 우리 지닌 것으로(Call Us What We Carry)'는 미국 문학의 오늘이다. 작가가 코로나19 시대를 온몸으로 겪은 우리를 꼼꼼하게 읽어 낸 수기와도 같다. 70편의 시에 담긴 연대와 희망의 메시지는 전 세계를 휩쓴 팬데믹 특성 때문에 오히려 수월하게 국경을 넘는다. 고먼은 청각처리장애를 가진 흑인 여성이란 복합적인 소수자성을 딛고, 2017년 미국 최초의 청년 계관시인이 됐고 지난해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의 최고 스타로 떠올랐다.

"우리 서로 만난 적은 없지만, / 우린 내내 서로를 감지해왔다, /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로 / 드넓게 불 밝혀, 조용히 & 헤매면서. / 그 어떤 인간도 우리에겐 낯선 사람이 아니다." ('등대' 중)

그의 시에는 언제나 '나(I)'가 아닌 '우리(We)'가 있다. 코로나19로 촉발된 단절과 고립, 거리 밖으로 터져 나온 혐오를 직시하되 분노보다는 '우리'로서 치유 의지를 택했다. 작가는 우리의 목표가 "보복이 아니라 회복"이고 "지배가 아니라 존엄"이며 " 공포가 아니라 자유"라고 말한다.

시각을 염두한 시작법이 독특하다. "독창적인 문학의 부활"(AP통신)이란 평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성조기 이미지 바탕에 쓴 'AMERICATM(아메리카 상표)'는 이미지와 시구가 어우러져 미 국회의사당 폭동 사태 등 최근 심화된 자국 내 극단적 분열 사태를 즉각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독특한 띄어쓰기와 행 바꿈으로 글자들이 하나의 스케치처럼 의사당을 재현한 'DC폭동', 검은 마스크 이미지 위에 글을 쓴 '익명으로' 등은 미술과 시의 재기 있는 조합을 보여준다.

에어리얼: 복원본·실비아 플라스 지음·진은영 옮김·엘리 발행·280쪽·1만7,000원


절망과 절정 오가는 생, 처절하게 노래한 플라스

고먼이 미래라면 플라스는 미국 문학의 현재를 있게 한 역사다. 20세기 영미문학사의 전설이자 여성주의 문학의 상징인 그는 독창적 방식으로 자신의 내면 깊은 곳을 드러낸 작가다. 마지막 시집 '에어리얼: 복원본(Ariel)'은 작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 집필한 40편의 시가 담겼다. 작가의 남편이자 영국 계관시인인 테드 휴스가 작가의 의도와 달리 일부 시를 가감하고 시의 수록 순서를 바꿔 출판한 부분을 바로잡은 게 이번 '복원본'이다. 덕분에 '간수' '죽어 멈춰 있는' 등의 작품들이 포함됐다.

"자유롭게 되는 것. 어둠이 뭘 하겠어 / 먹어치울 열병이 없다면?/ 빛이 뭘 하겠어 /찌를 눈이 없다면? 그가 뭘 / 하겠어. 하겠어. 하겠어. 내가 없다면." ('간수' 中)

여러 차례의 자살 시도 등 순탄하지 않았던 플라스의 인생사로 인해 그의 시 세계는 어둡게 해석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번역을 맡은 진은영 시인은 절정과 절망 사이에서 끊임없이 진동하는 삶을 그린 작품들이라고 봤다. 절정의 시로는 딸과 아들을 바라보며 생명의 기쁨을 쓴 시들이 있다. 서문을 쓴 작가의 딸 시인 프리다 휴스 역시 "자신의 능력을 다해 살았고 행복하기도 했고 슬프기도 했고…어머니는 모든 정서적 경험을 천 조각처럼 사용했다"면서 어머니의 그런 모든 노력이 이 시집을 낳았다고 설명했다.

플라스의 시는 청각적이다(고먼의 시와 다른 지점이기도 하다). 작가 스스로도 생전에 "눈이 아니라 귀를 위해 쓰였다"고 말했다. 진은영 시인은 옮긴이의 말을 통해 이 시집을 잘 감상하는 방법으로 인터넷에서 시인의 시 낭송 음원을 찾아 들으며 읽는 것을 권했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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