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들 버스·전세기로 뉴욕, 워싱턴 이동
준비 못한 북부 도시 난색, "법적 대응 검토"
민주 "인권 침해" 비난에… 공화 "바이든 탓"
미국 공화당 소속 남부 주지사들이 1만 명이 넘는 불법 이민자들을 민주당 시도지사가 당선된 미 동부 지역 등으로 무작정 보내면서, 이민자 문제가 정치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계산된 정치 쇼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인간 존엄성을 정치적 목적으로 훼손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불법 이민자들 민주당 '앞마당'으로
18일(현지시간)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중남미 이민자들을 정치적 졸(卒)로 이용하는 점을 두고 정치권에서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고 전했다.
포문은 텍사스주가 열었다. 강경보수 성향 그레그 애벗 텍사스 주지사는 4월부터 우루과이,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등에서 건너온 이민자들을 전세버스에 태워 예고도 없이 무작정 수도 워싱턴과 뉴욕, 보스턴으로 보냈다. 모두 민주당 소속 시장이 있는 도시다. 국경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지자체장들에게 말로만 ‘이민자 보호’를 외치지 말고 이민자 문제를 직접 체험해보라는 취지다.
의지와 무관하게 텍사스 땅을 떠날 수밖에 없던 불법 이민자 수는 5개월간 1만 명이 넘는다. 최근에는 생후 한 달 된 아기를 비롯해 100여 명을 실은 버스가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의 워싱턴 관저 앞에 도착하기도 했다.
공화당 소속 주지사가 이끄는 애리조나주 역시 5월 이후 망명 신청자 1,800명을 워싱턴으로 보내며 강제 이송 대열에 합류했다. 뉴욕항만청 관계자는 뉴욕포스트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3번, 많아야 하루 한두 차례 (이민자를 태운) 버스가 도착했지만 요즘은 매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밀려들고 있다”고 호소했다.
최근엔 유력 인사까지 ‘밀어내기’에 가세했다. ‘리틀 트럼프’로 불리며 공화당 차기 대선 주자로 꼽히는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14일 전세기 두 대를 띄워 베네수엘라 출신 불법 이민자 50여 명을 대표적 부유층 거주지 매사추세츠주 마서스비니어드 섬으로 보냈다. 그는 “이민자 이주 예산 1,200만 달러(약 166억 원)를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사용하겠다”며 텍사스주와 손잡겠다는 뜻도 밝혔다. 불법 이민자 강제 이송 문제를 소수 막무가내 정치인의 행보라고 여기기엔 ‘판’이 커진 셈이다.
민주 "생명 두고 정치" 비판
갑작스럽게 이민자를 떠안게 된 도시들은 혼란에 빠졌다. 밀려드는 버스를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없다. 지금까지 9,400명 넘는 이민자가 도착한 워싱턴은 주방위군 파견을 연방정부에 거듭 요청하고 있다. 숙소와 의료 서비스 등 지원 자금 확보를 위해 공공비상사태도 선포했다.
텍사스발(發) 이민자가 3,000명 이상 유입된 뉴욕도 숙소 부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금까지 비상 대피소 23곳을 열었지만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38곳을 추가 개소할 예정이다. 텍사스주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민주당은 공화당의 움직임을 ‘정치 쇼’라고 보고 있다. 두 달도 남지 않은 중간선거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오랜 난제인 불법 이민자 문제를 굳이 수면 위로 끄집어 냈다는 의미다. “밀입국 알선업자들이나 할 만한 수법(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 “생명을 놓고 정치한다(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등 불편한 감정도 숨기지 않고 있다.
인권 문제를 고리로 공화당의 ‘악랄함’도 비판하고 있다. 텍사스·플로리다주가 불법 이민자들을 북부 도시로 올려보낼 때 △코로나19 확진자들을 같이 버스에 태워 보냈고 △충분한 양의 음식과 물을 제공하지 않아 일부는 탈수 증상이 왔으며 △동물처럼 ‘꼬리표’를 달기도 했다고 주장한다. 민주당 소속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CNN방송에 “인간 손으로 만들어진 인도주의 위기”라며 “(공화당 주지사들의 행동은) 사람을 비인간적 방식으로 다루는, 인권 침해 사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공화당은 눈도 깜짝하지 않는 분위기다. 오히려 불법 이민자 증가를 바이든 정부의 이민자 포용정책 탓으로 돌리고 디샌티스와 애벗 주지사 옹호에 나서면서 이민 문제를 둘러싼 정치적 긴장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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