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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거장의 추악한 이면

입력
2022.09.2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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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6 필 스펙터

2005년 5월 가발을 쓴 채 LA 법원 재판정 피고석에 앉아 있는 필 스펙터. AP 연합뉴스

2005년 5월 가발을 쓴 채 LA 법원 재판정 피고석에 앉아 있는 필 스펙터. AP 연합뉴스

라디오 FM방식은 1930년대 등장했지만, 수신기 성능 등 기술적 문제로 1970년대에야 대중화됐다. 그 전 시민들은, 여전히 AM 라디오나 주크박스를 통해 노래를 청취했다. 방송 방식과 기술력, 수신기의 한계는 대중 음악인에게도 녹음과 프로듀싱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덜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을지 모른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그들의 노래는 녹음실에서 제작한 오리지널 사운드보다 훨씬 거칠고 빈약했다.

필 스펙터(Phil Spector, 1939~2021)라는 걸출한 음반 프로듀서가 그 시대적 한계에 도전했다. 그는 같은 악기를 다루는 다수의 반주자를 동원해 동시에 같은 악보를 연주하게 함으로써 음향을 입체화하고, 녹음실에 여러 개의 마이크를 각기 다른 위치에 두는 방식으로 또 한번 소리의 부피와 층을 확장했다. 스피커와 앰프를 통해 흘러나온 소리는 다시 에코 체임버를 통과하며, 마치 소리가 천장과 바닥, 사방 벽에 부딪혀 기둥처럼, 벽처럼 두툼하게 쌓이게 했다. 이른바 그의 ‘소리의 벽(wall of sound)’ 음향은, 스튜디오에서 단 하나의 마이크로 녹음된 기존 음악과 차원이 달랐다. AM 방송의 한계를 뛰어넘은 풍성하고 다층적인 음악에 먼저 음악인들이, 그리고 청취자들이 감응하기 시작했다.

그는 로네츠 등 1960년대 다수 스타 걸그룹을 시작으로 비틀스의 ‘렛잇비’, 레너드 코헨, 티나 터너 등 당대 스타들의 기념비적 음반을 프로듀싱했고, 이후 팝과 로큰롤, 블루스, R&B 등 모든 장르의 수많은 프로듀서와 가수들이 그의 방식을 응용했다. 그는 20세기 대중음악사의 한 챕터를 채울 만한 거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사생활은 한마디로 막장이었다. 결혼과 이혼을 세 차례 반복하며 상습 폭행을 일삼았고, 양자로 들인 아이들을 학대했다. 그는 2003년 배우 라나 클락슨을 자신의 집에서 권총으로 살해한 뒤 '자살'이라고 우겨 2007년 9월 26일 배심원단의 미결정심리로 석방됐다. 이후 2009년 재심에서 종신형을 선고받고, 지난해 1월 옥중 사망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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