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추행 혐의 기소된 전 볼링 국가대표 감독
1심 유죄 → 항소심은 무죄 "진술 신빙성 없어"
대법 "피해자마다 대처 양상 다를 수 있어" 파기
성범죄 피해자가 모텔에 동행했어도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진술 신빙성을 부정해선 안 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피해자다움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기존 법리를 확인한 것이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70대 남성 A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2019년 1월 A씨는 채팅앱을 통해 알게 된 30대 여성 B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B씨를 만나 "내가 국가대표 감독을 한 적이 있다. 중요하게 할 얘기가 있는데 여기는 추우니 모텔로 가자"고 했다. 모텔에 도착한 A씨는 B씨의 가방에 생활비에 보태라며 50만 원을 넣어주고 B씨를 추행했다.
재판 핵심 쟁점은 피해자 B씨의 진술 신빙성이었다. B씨의 진술이 유일한 직접 증거였기 때문이다.
1심은 피해 여성의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A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사건 이후 B씨가 지인들과 주고받은 메시지 내역과 불안함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한 점, B씨의 주요 피해 진술이 일관된다는 점, B씨의 지능지수(IQ)가 72로 낮은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항소심은 그러나 B씨의 태도가 강제추행 피해자라고 보기엔 수긍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B씨가 반대의사 없이 모텔에 동행하고 50만 원을 받았다는 점과 B씨가 일부 진술을 번복한 점을 들어 피해자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봤다. B씨가 채팅으로 A씨에게 먼저 대화를 시도한 점도 감안했다.
대법원은 항소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봤다. 대법원은 "피해자 진술은 주요 부분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며, 진술 자체로 모순되는 부분은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B씨의 지능지수와 사건 전후 심리 상태, 그리고 지인들에게 "A씨는 돈이 많아 신고해도 풀려날 것 같다"고 말한 사정을 고려해 진술 신빙성을 배척하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은 특히 성폭력 피해자가 처한 상황마다 대처 양상이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피해자다움'을 강요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통상의 성폭력 피해자라면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을 상정해두고 통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합리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논리와 경험칙에 따른 증거 판단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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