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전쟁 치른 후 최대 규모 교전
국경지대 영토 분쟁으로 오랜 기간 갈등
확전·석유 수송 차질 우려에 국제사회 중재 나서
"우크라 전장에서 러 유약함 드러난 게 동인"
미국 "러시아가 충돌 부추길 수 있어" 우려도
옛 소련 구성국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가 2년 만에 또 무력 충돌해 100명가량 숨졌다. 양국의 오랜 영토 분쟁이 다시 불붙은 탓이지만, 이 지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으로 힘을 잃은 게 또 다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영토분쟁' 아제르-아르메니아, 2년 만에 최대 규모 맞붙어
13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교전은 전날 밤부터 이날 새벽 사이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국경 지대 '나고르노-카라바흐' 인근에서 발생했다. 양국은 서로가 먼저 무력 도발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르메니아 국방부는 이날 자정쯤 아제르바이잔군이 국경지대 여러 곳을 공격해 자국군 49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반면 아제르바이잔 외무부는 "아르메니아군이 아제르바이잔군 진지 3곳에 지뢰를 설치하고 총격을 가하는 등 선제 도발해 대응 차원에서 공격했다"며 "최소 50명의 자국군이 숨졌다"고 반박했다.
이번 무력 충돌은 나고르노-카라바흐를 둘러싸고 벌어진 교전 중 2년 만에 최대 규모였다. '캅카스의 화약고'로 불리는 나고르노-카라바흐는 아제르바이잔의 영토지만, 주민 대다수가 아르메니아 민족이라 분쟁이 잦았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아르메니아계 분리 세력이 독립공화국을 세우고 아르메니아와 통합하겠다고 선포하자 아제르바이잔이 이를 거부해 1992∼1994년 전쟁을 치렀다. 1994년 휴전한 후에도 양측 간 충돌이 이어졌고, 2020년 다시 전쟁이 벌어져 6,600명 이상이 숨졌다. 개전 6개월 만에 러시아의 중재로 평화협정을 맺었지만, 사실상 아제르바이잔의 승리였다. 러시아는 양측의 추가 충돌 방지를 위한 평화유지군 명목으로 2025년까지 2,000명의 군사를 파견했다.
"러 영향력 줄어든 지금, 아제르바이잔에 절호의 기회"
국제사회는 분쟁이 격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중재에 나섰다. 두 국가의 무력 충돌은 카스피해 일대의 석유·가스 수송을 방해할 수 있는 데다 튀르키예(터키)와 러시아의 개입으로 확대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아르메니아와 방위 동맹을 체결했고, 터키는 아제르바이잔의 튀르크계 혈통을 정치·군사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실제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정부는 교전 직후 각각 러시아·우크라이나에 지원을 요청했다. 크렘린궁은 이에 대해 "푸틴 대통령이 긴장 완화를 돕기 위해 모든 노력을 하고 있다"고만 언급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대변인을 통해 "양측이 긴장을 완화하고 최대한 자제하며 대화를 통해 해결하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 등도 니콜 파쉬냔 아르메니아 총리와 통화를 하고 사태를 논의했다.
이번 충돌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옛 소련권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줄어든 틈을 타 발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러시아의 군사력이 한계에 달해 주변에서 자원을 끌어온 결과, 이 지역에서 전과 같이 힘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르메니아 지역연구센터 소장 리차드 기라고시얀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러시아의 유약함이 드러난 것이 이번 사태의 동인"이라며 "아제르바이잔이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포착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부터 관심을 돌리기 위해 러시아가 일부러 양국의 무력 충돌을 부추길 수 있다는 미국 측 주장도 나왔다.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부터 (국제사회의) 관심을 돌리려고 의도적으로 분쟁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미국은 항상 염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러시아가 영향력을 이용해 갈등을 진정시키고 폭력 사태를 해결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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