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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을 빨리 망가뜨리는 길

입력
2022.09.15 00:00
수정
2022.09.16 13:1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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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현재 우리나라에는 핀테크, 모빌리티, 헬스케어, 드론, 인공지능 등 모든 혁신 산업들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없게 발목을 잡는 '사전규제'가 있다. 필자는 올해 초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가전쇼)를 참관하였는데, 더 이상 글로벌 회사들은 '인공지능'이란 단어를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지 않았다. 이미 인공지능은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인공지능 스타트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가 예산까지 들여가며 학습데이터를 만들어 주고 있는 처지다. 대기업이든 스타트업이든 인공지능 학습을 위한 데이터를 구하기가 너무나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재식별이 어려운 비식별 개인정보도 개인정보라며 그 유통을 막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때문이다. 필자는 비식별정보를 이용해 개인을 식별하는 행위, 즉 프로파일링을 철저히 규제하고 비식별정보는 과감하게 그 유통을 허용하면서도 개인을 훌륭하게 보호하는 정책을 강력히 주장해 왔으나 개인정보보호 당국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개인정보보호뿐만이 아닌 모든 산업 영역에서 우리나라 규제가 '포지티브 시스템(허용대상만 열거)'으로 형성된 데는 연유가 있다. 과거 1970~90년대 우리나라는 제조업 부흥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기 위해 핵심산업에 부족한 자원을 집중하고 정부 주도로 예산을 투입해야 했다. 제조업은 완성된 제품에 불량이 발생하면 치명적이므로, 완제품의 성능과 수율을 최고로 높이기 위해 안전규제로부터 품질규제까지 다양한 포지티브 규제시스템을 낳게 된다.

그러나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기다. 플랫폼 기업들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결합해 서비스를 우선 출시하고, 소비자-공급자 생태계를 형성하고, 소비자들의 수요에 맞춰 서비스를 개선해 나가는 시대다. 그러므로 새로운 시도를 허용하는 '네거티브 시스템(불허사항만 열거)'이 필수적이다.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기존 전통산업 규제를 혁신산업에까지 확장해 적용하는 것, 둘째, 혁신산업에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 적용하는 것, 셋째, 모든 정보는 개인정보라며 데이터 활용을 가로막는 것이다. 정부와 국회의원이 혁신산업에 작은 부작용만 나타나면 뚝딱 규제입법을 발의하는 것이 일상화되고 있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어떤 혁신모델이 미래로 가는 방향과 맞다면 이를 과감히 허용하고 실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미래가 주권을 행사할 힘을 갖출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플랫폼 기업이 소비자를 빨아들이며 유통, 물류, 제조업을 수직계열화해 지배하는 시대다. 이젠 소비가전인 청소기 하나도 자율주행 기능과 인공지능이 없이는 팔리지 않는다. 공장자동화 등 스마트팩토리도 인공지능의 도움 없이는 달성하기 어렵다. 제조업도 인공지능 플랫폼이 필수적인 시대가 된 것이다. 정부가 역점을 두는 마이데이터도 그 데이터를 보호할 토종플랫폼의 육성 없이는 우리나라 국부와 데이터의 해외유출을 야기할 '로만 로드'(Roman Road)가 될 것이라 예상한다.

2022년 우리 규제시스템을 본질적으로 체질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입법혁신이나 정부혁신은 아직도 요원하다. 국회는 규제입법을 여전히 양산해내고, 정부는 신산업일수록 기존 낡은 규제를 확장해 가고 있다. 한국의 상황은 마치 서구열강 앞에서 문을 닫아걸고 개혁을 외면한 구한말 집권세력의 쇄국정책과 해금정책을 보는 듯하다. 대한제국이 주권을 잃고 망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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