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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도가 살린 런던... 콜레라 창궐 죽음의 도시서 벗어나다

입력
2022.09.13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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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병의 역사와 수도권 과밀
인구 과밀로 사망률 높던 유럽 도시
강 대신 바다로 오염수 흘리자 회생
과밀 막을 수 없다면 인프라 확충을

편집자주

주로 수치로 묘사되는 경제학은 추상적인 사회과학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삶으로 결국 구현되는 것은 경제 현상이라고 다르지 않겠죠. 경제 분야 대표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연구원들이 문학과 역사학, 철학에 등장하는 경제 이야기를 소개하는 ‘인문학 속 경제’를 3주에 한 번씩 화요일마다 연재합니다.

영국 템스강에서 노를 젓고 있는 죽음의 신. 하수 시스템의 전면 개편으로 이어진 1858년 ‘거대한 악취’ 사건 당시 한 잡지에 실린 만평이다. 생활하수 등 탓에 오염된 강이 콜레라 등 수인성 감염병의 매개체가 되면서 많은 런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위키피디아

영국 템스강에서 노를 젓고 있는 죽음의 신. 하수 시스템의 전면 개편으로 이어진 1858년 ‘거대한 악취’ 사건 당시 한 잡지에 실린 만평이다. 생활하수 등 탓에 오염된 강이 콜레라 등 수인성 감염병의 매개체가 되면서 많은 런던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위키피디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 새로운 변종이 생겨나면서 확진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지난 몇 년간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는데, 또 고통을 겪어야 하나 걱정된다.

과거에도 하나의 감염병이 여러 나라에 확산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감염병 대유행을 팬데믹(pandemic)이라 부르는데, 흑사병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는 콜레라다. 콜레라는 유럽 국가들의 식민지 활동이 절정에 달하던 19세기 전반에 인도에서 유럽으로 전파되었는데, 1831년에는 영국, 프러시아, 프랑스에 전파되었고 1833년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전파되었다. 그 후로 유럽에서는 여러 번 콜레라가 기승을 부렸다.

콜레라는 무서운 질병이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면 감염된 사람의 절반은 징후가 나타난 후 24시간 안에 사망한다. 극심한 설사로 인해 온몸의 수분이 빠져나가는 고통을 겪으며 죽는데, 탈수로 눈이 움푹 들어가고 피부는 파란색을 띠며 손발에 주름이 생긴다. 의식도 희미해진다. 근육 경련은 사망 후까지 계속되기도 한다. 19세기 이후 지금까지 콜레라로 인해 이런 고통을 겪으며 사망한 사람은 전 세계에 걸쳐 수천만 명에 이른다. 유명 인사 가운데에는 작곡가 차이콥스키가 콜레라로 사망했다.

하수구로 전락한 템스강, 콜레라 온상으로

환자들의 흉측한 모습 때문에 콜레라는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쓰이는 경우가 드물었다. 몇 안 되는 예외가 192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영화 ‘페인티드 베일’(2006)이다. 영국인 세균학자 월터 페인(에드워드 노튼 분)은 자신을 배신한 아내 키티 페인(나오미 와츠 분)을 억지로 데리고 중국의 외딴 마을로 간다. 거기에서 그는 아내와 냉랭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마을을 점령한 콜레라와 싸우는 데 열중한다. 화려한 사교계 생활에 익숙했던 아내는 산골생활의 무료함을 달래다가 프랑스 수녀들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남편과 아내는 상대방의 좋은 면을 발견하면서 닫혔던 마음을 서서히 연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그러나 콜레라와 싸우던 남편은 종국에 콜레라에 걸리게 된다. 아내는 정성껏 남편을 보살피지만 남편은 설사 때문에 대나무 침대에 누워 의식을 잃은 채 죽어 간다. 그에게 용서를 비는 아내를 남기고.

영화 ‘페인티드 베일’(2006)의 한 장면. 주인공 월터(에드워드 노튼 분)는 아내와 함께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 외딴 마을로 가서 환자 진료부터 안전한 상수 확보까지 감염병 의사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지만 결국 콜레라에 걸려 죽는다. 이모션픽쳐스 제공

영화 ‘페인티드 베일’(2006)의 한 장면. 주인공 월터(에드워드 노튼 분)는 아내와 함께 콜레라가 창궐하는 중국 외딴 마을로 가서 환자 진료부터 안전한 상수 확보까지 감염병 의사가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지만 결국 콜레라에 걸려 죽는다. 이모션픽쳐스 제공

콜레라는 물을 매개로 전염되는 수인성(水因性) 질병이다. 지금은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19세기 말까지 사람들은 세균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당시 사람들은 전염병이 ‘미아즈마(miasma)’라는 나쁜 공기로 전염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콜레라가 발생한 지역을 봉쇄하는 것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봉쇄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막대했다. 도시 지역의 식료품 공급 감소로 가격이 폭등했고, 소상공인이 파산하면서 실업자가 급증했다. 봉쇄를 풀어달라며 곳곳에서 시민들이 거리로 나섰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 방역 조치로 인해 손실을 입은 자영업자들이 시위를 벌였던 것이 생각난다.

19세기는 유럽에서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도시 인구가 급증하던 시기였다. 런던 인구는 1800년경 100만 명 정도였으나 이후 50년간 두세 배 증가했다. 당시 도시에서 생활용수는 가까운 강이나 냇물 또는 우물에서 길어다 썼다. 파이프로 가정에 물을 공급하는 시스템도 보급되었으나 수질은 나빴다.

하수 시스템도 열악했다. 사람의 대소변은 각 집에 설치된 오물통(cesspool)에 저장했다가 밤에 이를 수거해 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고 수거하도록 했다. 문제는 이렇게 수거된 것들이 종종 강에 버려졌다는 데 있다. 또 오물통에서 땅에 스며든 오수는 우물을 오염시켰다. 콜레라가 번성하기 좋은 여건이었던 것이다. 산업화로 도시 인구는 급격히 느는데 이를 뒷받침할 도시 인프라는 구축되지 못했기 때문에 당시 도시의 사망률이 농촌보다 높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19세기 전반의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산업화의 선두주자였다. 그러나 런던을 가로질러 흐르는 템스강은 늘어나는 인구를 감당하지 못해 오염이 극도로 심한 상태에 달했다. 이 강은 온갖 생활하수를 바다로 흘려보내는 하수구였던 셈인데, 몇 센티미터 아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탁했고 냄새가 심했다. 이로 인해 이질, 장티푸스 등의 수인성 질병이 수시로 발생했고, 19세기 중반에는 콜레라가 창궐했다. 1831~1832년에는 런던에서 6,000명이 콜레라로 사망했고 1848~1849년에는 1만4,000명, 1853~1854년에는 1만 명이 사망했다.

“요금 낼 돈 없다” 빈곤이 늦춘 파리 하수도

이런 가운데 드디어 1858년에 ‘거대한 악취(Great Stink)’라 불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염 물질로 가득한 강물이 한여름의 태양열을 받아 끓어오르면서 엄청난 악취를 발생시킨 것이다. 템스강가에 위치한 의사당(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의원들은 코를 찌르는 악취 속에 하수 시스템의 전면적 개편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1859년부터 6년간 이뤄진 런던의 하수관거 건설 공사의 한 장면. 1859년 제작된 목판화다. 웰컴컬렉션

1859년부터 6년간 이뤄진 런던의 하수관거 건설 공사의 한 장면. 1859년 제작된 목판화다. 웰컴컬렉션

의회 결정에 따라 건설 작업을 맡았던 ‘대도시건설위원회’는 300만 파운드를 조달해 작업을 시작했다. 이는 지금 돈으로 수천억 원에 달한다. 대도시건설위원회의 수석 엔지니어였던 조세프 배절제트(Joseph Bazalgette)는 이미 수년간 하수 시스템 개선안을 준비해 왔기 때문에 즉시 건설을 시작할 수 있었다. 템스강변을 따라 북쪽과 남쪽에 거대한 지하 하수관거를 건설하고 이를 통해 도시에서 모인 오물을 바다 가까운 쪽에 버린다는 계획이었는데, 수천 명이 동원된 공사는 1859년에 시작해 1865년에 끝났다.

하수 시스템 개선의 혜택은 즉시 나타났다. 1866년 런던 동부에서 콜레라가 발생했지만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지 않았다. 런던 동부는 아직 새로운 하수 시스템이 연결되지 않았던 곳이었다.

런던 외에 다른 유럽 도시도 비슷한 시기에 사업에 착수했다. 파리에는 예전부터 하수 시스템이 있었으며 19세기 들어 개선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었다. 이 과정은 빅토르 위고의 대작 ‘레 미제라블’(1862)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 장 발장이 코제트의 연인인 마리우스를 업고 폭동 현장에서 빠져나와 하수구를 통해 도망치는 장면이 나온다. 위고의 설명에 의하면, 그 배경이 되는 1832년만 해도 파리의 하수 시스템은 상당히 양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 나폴레옹 3세 때 본격적인 개보수가 이루어졌는데, 1860년대 중반경 파리의 하수도는 시민이 산책할 수 있을 정도로 넓고 쾌적했다.

1967년 복개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서울 청계천. 서울역사아카이브

1967년 복개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 서울 청계천. 서울역사아카이브

그러나 파리에서는 하수구가 큰 비가 내렸을 때 빗물을 내려보내는 배수구 역할을 주로 했다. 대부분의 집에서 오물통이 하수구에 연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자들은 하수도 요금을 지불할 수 있었으나 가난한 사람들은 지불하기 힘들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임대주택의 주인들은 하수도 연결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파리에서 대부분의 주택이 하수구에 연결된 것은 20세기 초였다. 이와 달리 런던에서는 일찍부터 모든 주택에 대해 하수구 연결을 강제해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대도시는 혁신의 중심… 분산이 능사일까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 이래 상하수도 구축 및 처리 시설 건설이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경제 성장과 더불어 도시로 인구가 빠르게 몰려드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주택 공급을 확대하고 상하수도 및 교통 시설 등의 인프라를 확충하면서 도시화에 따른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우리나라 도시 환경의 우수성은 다른 개발도상국의 대도시에 가 보면 더 절실히 느끼게 된다.

많은 이들이 수도권의 과밀을 걱정한다. 인구가 수도권으로 몰려들면서 집값이 올라가고 교통 체증이 심해지며 환경 오염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을 통해 인구를 분산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에 부응하여 우리 정부는 많은 세금을 투입해 균형발전정책을 추진해왔다. 또 수도권에 대해서는 대학 입학 정원 규제를 비롯해 많은 규제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 집중은 계속되고 있으며,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이 추세를 멈출 수 없었다.

한국 상하수도 보급률 추이. 그래픽=송정근 기자

한국 상하수도 보급률 추이. 그래픽=송정근 기자

지식경제시대의 대도시는 혁신과 창의의 중심지로 그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과감한 투자를 통해 도시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수도권 과밀을 걱정해 효과가 의심되는 분산 정책을 지속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생각해볼 때다.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직무대행.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직무대행.


고영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직무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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