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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기능 망가져 1인 가구 극단 선택 급증"[마음청소]

입력
2022.09.10 14:00
수정
2023.08.01 17:55
0 0

<15>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③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 인터뷰
"민간이 적극 참여하는 예방시스템 필요"

편집자주

내 마음을 돌보는 것은 현대인의 숙제입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이후엔 우울증세를 보인 한국인이 36.8%에 달하는 등 '코로나 블루'까지 더해졌죠. 마찬가지로 우울에피소드를 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 기자가 살핀 마음 돌봄 이야기를 전합니다. 연재 구독, 혹은 기자 구독을 누르시면 취재, 체험, 르포, 인터뷰를 빠짐없이 보실 수 있습니다.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10일은 자살예방의 날이다.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ASP)가 2003년 제정했으며, 한국도 지난 2011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정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표한 '2022 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여전히 우리나라 인구의 사망원인 순위 1위는 고의적 자해(자살)이다. 10~30대에서는 사망원인 순위 1위이고, 40대와 50대는 2위로 높은 편이다.

무용수들이 7일 오후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22 자살예방의 날 기념식'에서 슬로건(사람을 더하세요)의 의미를 담은 공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무용수들이 7일 오후 서울 중구 밀레니엄 힐튼 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22 자살예방의 날 기념식'에서 슬로건(사람을 더하세요)의 의미를 담은 공연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심리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A씨는 수개월째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람들을 자주 만나는 낮에는 괜찮다가도, 잠자리에 들려고 혼자 침대에 누우면 온갖 잡다한 생각이 꼬리를 물어서다.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기도 했던 그는 결국 6월 어느날 새벽 4시쯤, 자살예방상담전화에 연락을 취했다. 그러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국내에는 A씨처럼 벼랑 끝에 놓인 이들이 언제라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24시간 전화 상담 창구가 충분하지 않다. 보건복지부의 자살예방 전문상담전화(1393)나 정신건강상담전화(1577-0199)가 있지만, 하루 평균 36명이 극단 선택을 하는 상황에서는 역부족이다. 이들을 위한 전화상담 민간 기관으로는 한국생명의전화가 있다. 상담가 모두 자원봉사로 이뤄진 국제 NGO(시민단체)인 이곳. 6일 오후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Zoom)'으로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을 만났다.

"사회적 돌봄 체계와 공동체 의식의 회복이 시급"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이 본보와 화상인터뷰를 하고 있다. 손성원 기자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이 본보와 화상인터뷰를 하고 있다. 손성원 기자

하 원장은 코로나19 이후 일상회복 과정에서 극단 선택이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2020년에는 전체 인구를 놓고 봤을 때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율은 2019년에 비해 4.4% 줄었다. 하지만 10대와 20대 자살률 증가폭(2020년 기준·인구 10만 명당 비율)은 각각 9.4%, 12.8%로 늘어난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생명의전화로 상담을 요청하는 이들이 급증하고 있다. 2020년에는 전년 대비 60% 증가했다. 하 원장은 "주로 10대나 20대가 전화를 했다"며 "한강교량에 설치된 SOS생명의전화도 자원봉사 상담가들의 숫자가 정해져 있으니 눈에 띄게 통화량이 늘었다고 볼 순 없지만, 매일 1~3명의 고위험자들이 전화를 건다"고 말했다.

"자살 예방에는 크게 '자살위험 요인 제거'와 '자살 보호 요인 증진' 두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후자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기울이고 있어요. 가족 기능이 망가지면서 1인 가구가 급증했는데 고독사나 극단선택이 매년 4,000건에 육박합니다. 사회적 돌봄 체계와 공동체 의식의 회복이 시급합니다."

이에 하 원장은 민간 참여형 자살예방을 강조했다. 단순한 프로그램 단위로는 지금의 추세를 바꾸기 힘들다는 것이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예방시스템이 갖춰져야 실질적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전 국민적 참여 확대로 공동체 의식 높일 수 있어"

7일 오전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같생(같이 살자) 서포터즈 박람회를 찾은 시민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7일 오전 서울 중구 청계광장에서 열린 같생(같이 살자) 서포터즈 박람회를 찾은 시민들이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뉴시스

국가에서 운영하는 24시간 전화 상담체계가 있으나 급증하는 상담 건수에 대응하기엔 부족하다. 하 원장은 "처음에는 30명가량 상담가를 투입했으나 주야간 등 업무 시간 내 실제 가동 인력은 10명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사례를 전했다. 미국은 7월부터 '자살예방생명의선' 전화번호를 세 자릿수로 단순화하자 상담전화와 문자메시지가 급증했다. 원래 '1-800-273-8255'였던 번호를 '988'로 줄이면서 닷새간 9만6,000건이 넘는 상담이 접수된 것이다. 1년 전 같은 주에 비해 66% 증가한 수치다.

"미국은 정부가 직접 운영하기보다는 988에 참여하기 원하는 시민단체를 모집합니다. 심사 후 예산을 지원하는데, 대부분 훈련받은 퇴직군인 등 자원봉사자들이죠. 전국적으로 방대한 네트워크를 통해 위기시 빠르게 개입합니다."

부족한 상담원 문제도 민간의 활동 범위를 넓힘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전화 등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게 공동체 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살예방 국가 정책이 단순히 극단 선택 위험요인 제거를 떠나, 전반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보살피는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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