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단절 속 이례적 당국 회담 제안
'시급성' 등 이유… '대화 물꼬' 포석도
윤석열 정부 반감 北 호응은 미지수
'정권수립 기념일' 9일까지가 1차 관문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8일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두고 "이산가족 문제를 논의하자"며 북한 당국에 남북회담을 공개 제의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남북 간 대화 단절 상태가 계속되자 시급한 이산가족 문제부터 대화 물꼬를 트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다만 북한이 현 정부를 향해 '상대하지 않겠다'는 메시지까지 낸 터라 전격 제의에 호응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권 장관은 이날 담화 발표를 통해 "남북의 책임 있는 당국자들이 빠른 시일 내 만나 이산가족 문제를 비롯한 인도적 사안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는 "회담 일자, 장소, 의제와 형식 등은 북한 측 희망을 적극 고려하겠다"고 덧붙였다. 회담 상대로는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공석이라 리선권 통일전선부장을 지목했다.
이번 회담 제의는 통상의 사례와 차이가 있다. 그간 이산가족 상봉 추진은 남북 간 신뢰관계가 형성된 상태에서 실무 논의가 무르익으면 적십자사가 제안해 이뤄졌다. 권 장관은 급히 회담을 제안한 이유로 "한 달에만 이산가족 400여 분이 세상을 떠나고 남아계신 4만여 분도 80~90대의 고령"이라며 '시급성'을 강조했다. 당국 차원에서 회담을 공개 제안한 이유에 대해선 "방역 상황 등으로 이산가족 상봉이 실현되더라도 추가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과거 같은 일회성 상봉으론 부족하다"며 정례화 등 근본적 대책 마련 필요성도 강조했다.
이산가족 문제 논의를 계기로 북한과 전반적인 대화 국면을 되살려보려는 포석도 숨어있다. 권 장관은 "(회담에서) 다른 의제로 확장되는 것에 대해선 절대적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쌀 지원' 등 반대급부 제안에 대해선 "인도적 문제에 대해 특별한 유인책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며 거리를 뒀다. 다만 "대화 계기에 다른 인도적 문제에 대한 요청이 있다면, 정치·군사적 상황과 상관없이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충분히 긍정적으로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인도적 사안을 거래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면서도 사실상 북한의 요구에 열려 있는 태도를 취한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호응 가능성이다. 이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달 윤 대통령의 '담대한 구상' 제안을 단칼에 거절한 상태다. 북한이 우리 기대처럼 인도적 사안과 정치·군사적 사안을 분리하는 태도를 보여온 것도 아니라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회담 제의는 사전조율 없는 일방적 제안으로 판단되며, 북측 수용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북한은 '지지율 만회를 위한 국내정치용'으로 평가절하하고, 윤 정부는 북 측이 호응하지 않으면 '인도적 문제까지 외면한다'는 대북 압박 기제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당장 전날 시작된 북한 최고인민회의(우리의 정기국회에 해당), 9일 정권수립 74주년 기념일이 1차 관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전날 회의엔 불참했지만 이날 2일 차 회의 또는 정권수립 기념일 연설을 통해 주요 메시지를 낼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설령 이산가족 회담 제안이 무시되더라도 정부가 향후에도 일관된 기조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담대한 구상의 구체적 내용이 다음 달 나오면 연말까지 대국민·대북 설명을 다방면으로 한 후, 내년 연초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해서 접촉면을 만들고 실무적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모양새가 적절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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