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영 고려대 국문과 교수
'나이는? 성적은? 대학은? 취업은? 결혼은?'
손아랫사람 생애주기별 걱정 금지
할 말 없으면 상대방 관심사 물어봐라
명절대피소.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 오픈사전에 실린 말로 '취업 준비생들이 명절에 친척 잔소리를 피하는 장소'를 뜻한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명절마다 불편한 질문 공세에 시달리는 젊은 세대가 많다는 방증인 셈이다. 세대마다 다른 화법에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이 마음에 상처만 받고 헤어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공정과 정의에 남다른 감각을 지닌 MZ세대(1980년대초∼2000년대초 출생)에게는 "예쁘다"는 말도 칭찬이 아니라 '얼굴 평가'로 들린다.
신지영 고려대 국문과 교수는 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첫 명절인 이번 추석에 (가족 간에 말로 상처 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자"면서 대화 요령을 전했다.
먼저 신 교수가 꼽은 절대 금기어 세 가지. 3위는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를 앞세운 잔소리, 2위는 '요즘 애들은'과 '라떼는(나 때는)'를 위시한 비교다. 모두 오랜만에 보는 친척을 향한 "관심의 밀도"를 보여주는 말들인데, 정작 듣는 사람은 "왜 저러지"라는 반응이 나온다. 추석 금기어 1위는 진로를 묻는 '앞으로 계획이 뭐냐'라는 말이다. 신 교수는 이 표현을 "관심이 절정에 달한 말"이라며 "어느 학교, 어느 직장 갈 거냐는 질문도 '계획이 뭐냐'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학교 성적부터 대학 입학, 취업과 결혼, 출산까지 젊은 세대가 불편해하는 '명절 잔소리'에는 공통점이 있다. 신 교수는 "('계획이 뭐냐'는 질문은) 생애주기별로 다 있다"면서 "대체로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라고 정의했다. 이와 반대로 명절에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도 "조카가 삼촌에게 취업 언제 하실 거냐, 연봉 얼마냐, 노후 준비는 어떻게 하셨냐, 은퇴 후 뭐 하실 거냐"고 묻는 일은 없다는 말이다. 신 교수는 "언어는 습관적으로 나온다. 명절에 그런 말 듣는 게 싫었는데, 그 위치(손위)가 되면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모를 비롯한 각종 비교‧평가도 당연히 금기어다. 신 교수는 "외모 평가는 정말 조심하셔야 한다"면서 "(예쁘다, 살 빠졌다는 말도) 뭔가를 평가했다는 것으로 대상이 된 사람이 불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성장기 어린이‧청소년에게 '많이 컸다'고 칭찬하는 건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괜찮다"고 조언했다.
남 걱정도 외모 평가도 하지 않고서, 추석에 친척들과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신 교수는 "(손아랫사람에게) 신조어를 물어보라"고 말했다. 상대 세대가 관심 있어 하는 분야를 물어보는 방식으로 대화를 풀면 오해도 줄이고 분위기도 좋아진다는 말이다. 그는 "우리가 말을 시작할 때 '아니'(라는 부정형으)로 시작할 때가 굉장히 많다"면서 "젊은 세대는 이걸 아니시에이션(아니+ initiation)이라고 부른다. 이번 추석에는 '맞다'는 긍정의 말로 시작해보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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