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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널드에 간 마네, 빅맥을 먹는 고흐

입력
2022.09.08 19:0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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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지
김선지작가

인상파 명화, 햄버거를 팔다

에두아르 마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1881~82년(왼쪽)과 맥도널드 광고 이미지(오른쪽).

에두아르 마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1881~82년(왼쪽)과 맥도널드 광고 이미지(오른쪽).

위 작품은 에두아르 마네의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이다. 화가는 19세기 파리의 술집에서 발레나 서커스 공연을 보며 먹고 마시는 파리지앵들(Parisians)의 활기차고 떠들썩한 밤 문화를 묘사하고 있다. 중앙에 서 있는 여성은 당시 폴리 베르제르의 바에서 일했던 쉬종이라는 실제 인물이다. 마네는 자신의 그림에서 습관적으로 매춘과 오렌지를 연결시키곤 했다. 미술사학자 T.J. 클라크는 그녀가 폴리 베르제르 바의 매춘부 중 하나이며, 술이나 오렌지 같은 다른 먹거리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품이라고 분석한다. 그녀의 표정은 화려한 밤 파티의 분위기와는 달리 우울하고 공허해 보인다.

옆 그림은 글로벌 광고 회사 DDB 월드와이드가 마네의 걸작에 맥도널드의 '황금 아치(Golden Arch)' 로고를 합성해 제작한 패러디 광고물이다. 맥도널드는 이 회사의 오랜 고객이다. 광고 이미지에서는 맥주병 대신 브랜드 로고가 인쇄된 종이봉투가 있고, 냅킨 위에 놓인 치킨 너겟은 봉지에서 막 꺼낸 듯하다. 웨이트리스는 주류가 아닌 치킨을 서빙하고 있다.

명화 패러디 광고물: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해변의 인물'(왼쪽)과 마네의 '온실에서'(오른쪽)

명화 패러디 광고물: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해변의 인물'(왼쪽)과 마네의 '온실에서'(오른쪽)

위 그림들 역시 맥도널드 광고물 이미지다. 해변의 두 여성을 그린 르누아르의 작품에서는 서 있는 인물이 맥도널드 봉투를 들고 있다. 마네의 그림에서는 맥도널드 콜라 컵을 든 남자가 온실에서 여성과 대화한다. 맥도널드는 이렇듯 몇몇 인상파 그림에 '클래식이 될 것이다(Meant to Be Classic)'라는 타이틀을 붙인 흥미로운 광고물을 선보였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들의 권위를 빌어 클래식이 되려고 한 것이다.

한편, 걸작 초상화에 베이컨 조각이 은밀하고 유머러스하게 삽입된 광고물도 있다. 아래 그림에는 '모나리자'의 어깨와 반 고흐 자화상의 재킷에 맥도널드 빅맥 베이컨이 얹혀 있다. 미국 화가 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의 남자가 들고 있는 쇠스랑에도 베이컨이 꽂혀 있다. 다소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독창적인 이 패러디 포스터 밑부분에는 '클래식. 베이컨과 함께(A classic. With bacon)'라는 어구가 작게 인쇄되어 있다.

왼쪽부터 그랜트 우드, '아메리칸 고딕', '모나리자', 반 고흐의 자화상

왼쪽부터 그랜트 우드, '아메리칸 고딕', '모나리자', 반 고흐의 자화상

맥도널드는 수십 년 동안 소비자의 마음을 끌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광고 캠페인을 해 왔다. TV, 라디오, 신문, 소셜 미디어를 통한 홍보 외에도, FIFA 월드컵과 올림픽 같은 각종 스포츠 이벤트를 후원하면서 광고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엔 마이클 조던, 방탄소년단과 파트너십을 맺고 이들의 이름을 딴 메뉴를 발매하기도 했다. 명화를 패러디한 기상천외한 광고들도 이렇듯 광범위한 홍보 전략의 일환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맥도널드는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이자 햄버거 업계의 제왕이다. 동시에 건강에 좋지 않은 정크푸드의 상징이다. 맥도널드는 비만 인구 증가에 일조하며 많은 일회용품을 배출하는 환경 파괴형 브랜드 중 하나로 비판받고 있다. 맥도널드의 명화 사랑은 예술작품의 아우라를 빌어 정크푸드의 오명을 벗고 그 품격을 높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치 졸부가 상류층의 생활 문화 패턴을 모방해 콤플렉스를 벗어버리려는 것처럼 말이다.

아니면, 놀라운 기업 신화를 이룩한 맥도널드 제국에 대한 자부심의 발로일까? 'Meant to Be Classic'이란 자구에는 스스로의 가치가 고급문화에 전혀 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엿보인다. 맥도널드는 코카콜라, 나이키와 함께 미국에서 탄생한 가장 성공적인 글로벌 브랜드다. 그것은 미국문화의 아이콘을 넘어서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미각의 성전이 되었다. 모스크바에 매장이 생겼을 때 한 러시아인은 '천국의 기쁨을 맛볼 수 대성당 같은 곳'이라고 찬양했다고 한다. 외면하기 힘든 그 익숙한 맛으로 유혹하는 맥도널드 빅맥은 현대인에게는 어쩌면 이런 명화들보다 더 고전다운 고전인지도 모른다.

빅맥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현대인은 맥도널드의 마력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우리는 국경선을 초월해 세계인의 입맛을 통일한 맥도널드 제국에 사는 사람들이다. 또한, 맥도널드는 값싼 비용으로 간편하고 빠르게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맥도널드는 속도와 효율성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현대인의 생활 패턴과 깊게 맞물려 있다. 맥도널드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까?

미국의 사회학자 조지 리치는 현대사회를 맥도널드화(McDonaldization)로 특징짓는다. 빵과 패티의 크기, 굽는 정도, 피클의 개수 등 모든 작업을 수량화, 표준화, 자동화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한 맥도널드식 패스트푸드 시스템이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고 분석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맥도널드는 단순히 패스트푸드 체인점 이상의 무엇, 즉 현대사회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핵심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맥도널드가 우리 시대의 클래식으로 인정받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19세기 말, 파리 미술계에서 형편없다고 조롱받은 인상주의도 지금은 고전이 되었다.

최고의 명화들이 패스트푸드를 홍보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림을 훼손했다고 눈살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명화는 명화고, 맥도널드는 맥도널드다. 명화의 후광을 입는다고 해서 빅맥을 우아한 고급 음식이라고 감탄하면서 먹을 사람은 없다. 분명한 것은 미술 작품과 빅맥 모두 우리의 삶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하는 인류 문화의 자산이라는 것! 둘 다 사랑하고 즐길 수 있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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