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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타인이 바라본 나'로 완성되는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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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타인이 바라본 나'로 완성되는 퍼즐

입력
2022.09.09 17:0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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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소설집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
4년여간 쓴 단편 9편 묶어내
안팎에서 본 '나' 뒤엉킨 혼란 속 진실
30년차 작가 새 시도 '소설가 소설'도
미스터리·열린 결말 등으로 흥미 높여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속 나는 낯설다. 타인의 시선으로 읽는 나는, 사이가 데면데면한 지인과 같다. 그럼에도 나의 경계 밖에서 그린 조각들은 '나'라는 퍼즐을 완성시킨다. 성격검사도 배우자처럼 가까운 사람이 나에 대해 답했을 때와 내가 직접 답한 결과물을 비교, 분석해봐야 더 정확하다지 않는가. 그래서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라는 상투적 표현은 때론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게 막는 벽이 된다.

30년차 소설가 김경욱의 아홉번째 소설집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는 그런 측면에서 '나'를 고집스럽게 쪼개 보는 시도로 가득 차 있다. 4년여간 쓴 9개의 단편 속 인물들은 안팎에서 본 '나'가 뒤엉켜 혼란스럽다. 하지만 독자는 책 밖에서 혼돈을 지켜봄으로써 그 인물에 한 걸음 더 다가간다.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떻게 세상과 연결돼 있는가' '이 세상의 무엇이 나에게 반영돼 있는가'라는 작가의 질문을 곱씹게 된다.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김경욱 지음·문학과지성사 발행·304쪽·1만4,000원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김경욱 지음·문학과지성사 발행·304쪽·1만4,000원

소설집의 시작이자 표제작인 '누군가 나에 대해 말할 때'는 이런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다. 주인공은 자신을 삼인칭 '김중근'으로 지칭하는 은둔형 외톨이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와 거리를 둬야 하는 사람으로 설명한다. 부모님의 뜻에 따라 아버지를 대신해 교통사고 가해 혐의로 옥살이를 한 비밀은 주인공이 '김중근'을 자신의 밖으로 밀어내고 싶게 만든다. "머릿속에 수백 개의 팽이가 돌아가면서 메스꺼운 느낌이 들 때 내가 아닌 김중근이라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여기면 도움이 된다." 이 같은 맥락에서 제목 속 '누군가'는 '김중근' 자신이다. '나'로선 말 못할 비밀이지만 '김중근'의 비밀이라 고백 아닌 고백을 하는 셈이다.

그런가하면 '윗집 남자'의 주인공 '수영'은 타인이 보는 '나'를 직면하는 순간 무너진다. 육아휴직 중인 그는 아이가 잠든 사이 잠깐 외출하는 게 전부다. 그러던 어느 날 외출에서 어떤 여자와 동선이 겹친다. 상대가 두려워하는 기색을 느끼자 자신은 그 여자를 해코지할 의도가 없다고 "치한이라는 오해"를 풀겠다고 속으로 외치며 걸어간다. 하지만 "정체 모를 비릿한 열기에" 휩싸여 그 여자의 뒤를 쫓은 게 분명해진 순간, 자신의 모습을 뒤늦게 깨닫고 도망친다.

이번 소설집에는 작가의 새로운 시도도 담겼다. 바로 '소설가 소설'이다. 이제껏 화자라는 가면을 벗기 힘들다며 산문집 한 권 내지 않고, 작가와 픽션의 경계를 명확히 했던 작가가 김경욱이다. '소설가 소설'은 산문과 소설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시대에 부합한 시도다. 다만 그는 짝을 이룬 두 단편('그분이 오신다'·'이것은 내가 쓴 소설이 아니다')으로 단순히 시대의 요구에 응하는 것 이상을 보여준다. 소설가 이야기를 다룬 '그분이 오신다'를 자신이 쓰지 않았다고 반박하는 소설가의 얘기인 '이것은 내가 쓴 소설이 아니다'를 통해서다.

김경욱은 1993년 중편소설 '아웃사이더'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장국영이 죽었다고?'로 한국일보문학상(2004), '99%'로 현대문학상(2007), '위험한 독서'로 동인문학상(2009) 등을 받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경욱은 1993년 중편소설 '아웃사이더'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장국영이 죽었다고?'로 한국일보문학상(2004), '99%'로 현대문학상(2007), '위험한 독서'로 동인문학상(2009) 등을 받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밀려나는 존재를 조명한 대목도 곳곳에 보인다. 전작 소설집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에서도 세월의 흐름에 "퇴장하는 일만 남은 존재들"에 대해 쓴 적이 있다. 문학이라면 밀려난 존재들의 존엄을 그려보여야 한다는 게 작가의 생각이다. '돼지가 하는 일'의 주인공인 택시기사 '조원배'를 향한 시선도 그렇다. 일곱살에 6·25를 겪은 그는 "지뢰를 대신 밟아준 것으로도 모자라 영혼의 한 사발까지 내어준" 대길이(개) 이야기를 외국인 저널리스트 손님에게 한다. 순간의 정적에 당황해 "만취 상태로 소변을 보면 나도 모르게 한쪽 다리가 들려"라는 엉뚱한 말을 내뱉은 후, "목젖이 튀어나오도록 웃는" 손님을 보며 '조원배'는 "내 6·25든, 내 대길이든, 내 인생이든, 그 무엇이든" 존중받는 느낌을 받는다.

미스터리, 열린 결말 등 김경욱 단편 세계의 익숙한 특징도 여전하다. 이는 작품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장치이면서 소설을 질문을 던지는 장르라고 여기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예를 들면 '튜브'는 주인공이 자신의 이름이 적혔지만 제 것이 아니라고 말한 선내 분실물 튜브의 진짜 주인을 찾는 과정을 따라 서사가 진행된다. 결국 선박 침몰사고로 인한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사는 주인공의 현실이 드러난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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